[시선뉴스 심재민] 일제강점기의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 당시 상황을 유추해 볼 수 있는 유적지와 유물, 기목물들은 시대상을 고스란히 품고 있어 국가의 중요성과 독립투사들의 투혼을 상기 하기해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독립운동 자금 마련 위해 발행된 이른바 ‘독립공채’ 기록물 원본이 처음으로 공개되었다. 행정안전부 대통령기록관은 8.15 광복절을 맞이하여 1919년 9월 1일 발행된 ‘독립공채’ 원본 60매와 소유자 15명의 명단을 대통령기록관 누리집을 통해 공개했다고 밝혔다.

대통령기록관 제공
대통령기록관 제공

독립공채는 1919년 임시정부가 중국 상하이와 미국 하와이에서 각각 원(圓)화와 달러화로 표시해 발행한 채권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독립공채의 정식명칭은 「대한민국공채표(‘Republic of Korea Certificate of Indebtedness’)」이며 대한민국집정관총재(大韓民國執政官總裁) 이승만과 특파주차구미위원장(特派駐箚歐美委員長) 김규식 명의로 발행되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발행한 채권인 독립공채. 대통령기록관은 올해 8.15. 광복절을 맞아, 그동안 대통령기록관에 소장하고 있던 독립공채 원본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독립공채는 일제강점기 소지한 것 자체로 처벌받아 숨기거나 태워버린 경우가 많기 때문에, 현재 찾아보기 힘들어 이번 공개는 더욱 의미 있다.

대부분 숨겨졌거나 불탄 독립공채가 어떻게 남아 있었고, 정부의 손에 들어올 수 있었을까? 1953년, 1954년 정부는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로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호놀룰루 영사관에서 미주지역 ‘독립공채표’를 수집하였다. 이 과정에서 ‘독립공채표’ 원본 60매와 구매금액, 차정석, 왕윤봉, 송재운 등 15명의 구입명단 등이 확인되었다. 이 중에는 C. S. HONG의 소유로 되어 있는 액면가 50달러의 제1호 증서도 포함되어 있다.

독립공채표 소유자 중 차정석(車貞錫)은 대한민국임시정부에 활동했던 차리석의 동생으로 로스앤젤레스지방회 회장으로 활동하였고 1908년부터 1945년까지 여러 차례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한 인물이다. 오충국 역시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면서 1907년부터 1945년까지 수십 차례에 걸쳐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했다. 두 사람의 독립운동 공적은 ‘공훈전자사료관 독립유공자공훈록’에 등재되어 있다.

광복절을 계기로 제공하는 독립공채 관련 기록물은 조국의 광복을 위해 미주지역에서 독립운동을 지원한 한인들의 사례를 보여주는 자료로 의미 있다. 주권을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목숨 걸고 싸운 독립투사들의 기록물은 역사 교육의 일환으로도 중요하다. 광복절을 맞아 공개된 독립공채 역시 우리 아픔 역사를 돌아보고 주권의 중요성을 다시금 상기시키는 기록물이라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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