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조재휘] 프랑스의 패션 디자이너로 전 ‘디올 옴므’, ‘생로랑’의 수석 디자이너를 맡았고 현재 셀린느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 중인 ‘에디 슬리먼’. 포토그래퍼로도 활동 중인 그는 남성복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파격적인 슬림함, 일명 스키니라 불리는 패션을 선보인 바 있다.

어릴 때부터 시작한 예술 활동

[사진/Wiki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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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난 슬리먼은 11살 때 처음으로 사진을 접하면서 예술 활동에 입문하게 된다. 카메라를 선물 받아 흑백 암실에서 인쇄술을 배우기도 했으며 16살 때 자신만의 옷을 만들기 시작하며 패션을 접하게 된다. 한때는 기자의 꿈을 갖고 정치사회학을 공부했었으나 패션에 대한 열정으로 미술이론 교육 분야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에꼴 뒤 루브르(École du Louvre)에서 역사와 미술사를 전공했다.

패션 디자이너의 시작

[사진/Wiki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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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디자이너로는 1989년부터 ‘죠제 레뷔’의 어시스턴트로 일을 시작했고 이후 패션 컨설턴트 ‘장 자크 피카르트’ 밑에서 유명 디자이너들이 참여했던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경험을 쌓는다. 1996년에는 이브 생로랑의 동업자인 ‘피에르 베르제’가 슬리먼에게 남성복 디렉터로 임명했고 나중에는 아티스틱 디렉터 자리까지 맡게 된다. 2000/01년 F/W Black Tie 컬렉션에서 슬리먼은 스키니 실루엣의 시초가 되는 의상을 발표하고 이브 생로랑을 떠나게 된다.

디올 옴므에서의 활동

[사진/Flickr]
[사진/Flickr]

2000년에는 크리스찬 디올의 새로운 남성복 라인인 디올 옴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를 맡게 되고 이후 디올 옴므의 모든 이미지를 총괄하고 책임지게 된다. 디올 옴므의 첫 향수 제품의 출시를 주도하기도 했으며 2002년에는 미국 패션디자이너 협회상을 수상한 최초의 남성복 디자이너라는 영예까지 차지하게 되었다.

할리우드 배우 브래드 피트는 제니퍼 애니스턴과의 결혼을 위해 슬리먼에게 웨딩드레스 제작을 의뢰하기도 했다. 사실 슬리먼은 여성복 컬렉션을 디자인했던 적은 없었다. 그러다 디올에 재임하는 동안 마돈나와 니콜 키드먼을 포함한 수많은 여성 연예인들이 그의 옷을 입었고 예술가들을 위한 무대 의상을 제작하기도 했다. 이런 경험을 살려 2007년, 본인의 이름을 딴 브랜드를 만드는 문제로 디올과 갈등이 있었고 슬리먼은 디올과 작별 인사를 나누게 된다. 

이브 생로랑에서 셀린느로

[사진/Wikimedia]
[사진/Wikimedia]

디올을 떠난 슬리먼은 LA로 이주해 포토그래퍼로서의 삶을 시작했고 2009년 S/S 시즌에는 프라다 남성 컬레션의 광고 비주얼까지 촬영하며 포토그래퍼로써의 활동을 펼쳤다. 2012년 3월, 이브 생로랑과 모기업인 PPR은 거의 8년 동안 자리를 지켜온 ‘스테파노 필라티’를 대신해 슬리먼이 이브 생로랑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를 맡을 것이라며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슬리먼이 다시 패션디자이너로의 복귀를 알린 것이다. 슬리먼은 여성에게 자유를 선사하고, 사회 참여적이며 당시 시대상에 본능적으로 어울렸던 브랜드의 창립 정신으로 되돌아가고자 브랜드명을 생로랑으로 변경했다.

4년여의 시간 동안 생로랑에서 컬렉션을 발표하고 2016년 생로랑을 떠났다. 그러다 2018년 1월, LVMH는 슬리먼이 ‘피비 파일로’를 대신해 셀린느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를 맡을 것이라고 공식 발표하며 현재까지 셀린느에서 컬렉션을 구현하며 활발히 활동 중이다. 

남성복은 ‘에디 슬리먼’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설명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남성복계에 큰 족적을 남긴 ‘에디 슬리먼’. 남성복에서 스키니 실루엣의 과감한 시도는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지금도 자신만의 특유의 스타일의 핏과 소재를 융화시키며 대중들의 호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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