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창] 프랑스 혁명의 촉발, 호화스러운 삶 이후 단두대에 처형된 ‘마리 앙투아네트’
[지식의 창] 프랑스 혁명의 촉발, 호화스러운 삶 이후 단두대에 처형된 ‘마리 앙투아네트’
  • 보도본부 | 홍탁 PD
  • 승인 2021.07.07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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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뉴스 홍탁]

◀NA▶
사치와 허영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으며 사치스러운 생활로 프랑스의 국가 재정위기를 초래한 사람이 있습니다. 결국 시민들의 분노를 사서 프랑스 혁명을 촉발시킨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죠. 프랑스와의 동맹을 위해 루이 16세와 정략 결혼했지만 왕비로 재위하는 동안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 38살 생일 2주를 앞두고 단두대에 처형된 왕비. 바로 ‘마리 앙투아네트’입니다.

[출처 = 픽사베이, 위키미디어, artvee, 영화 마리앙투아네트 스틸컷]
[출처 = 픽사베이, 위키미디어, artvee, 영화 마리앙투아네트 스틸컷]

◀MC MENT▶
‘마리 앙투아네트’는 1755년 11월, 신성로마 제국의 황제 ‘프란츠 1세’와 헝가리와 보헤미아의 여왕 ‘마리아 테레지아’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 오스트리아는 프로이센의 위협을 받고 있었기에 그동안 적대국이었던 프랑스와 동맹 관계를 강화해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프랑스 역시 영국을 견제하기 위해 오스트리아와의 협력이 필요했죠. 

[출처 = 픽사베이, 위키미디어, artvee, 영화 마리앙투아네트 스틸컷]
[출처 = 픽사베이, 위키미디어, artvee, 영화 마리앙투아네트 스틸컷]

◀NA▶
마리의 어머니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는 마리를 프랑스의 왕태자 루이 오귀스트(훗날의 루이 16세)와 결혼시킴으로써 이 동맹을 성사시키고자 했습니다. 결국 마리는 14살의 나이에 베르사유 궁전에서 루이와의 결혼식을 치르고 프랑스의 왕세자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되었습니다. 활발한 성격의 마리는 내성적이고 어린 루이에게 쉽게 정을 붙이기가 힘들었습니다.

여기에 프랑스 귀족들의 시기심까지 더해져 마리는 점차 프랑스에서의 생활에 외로움을 느끼고 지쳐만 갔죠. 마리는 힘듦과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사치에 몰두했고 밤마다 베르사유 궁전의 소궁인 프티트리아농에서 귀족들과 호화로운 파티나 가면무도회를 열면서 스트레스를 풀었습니다. 

[출처 = 픽사베이, 위키미디어, artvee, 영화 마리앙투아네트 스틸컷]
[출처 = 픽사베이, 위키미디어, artvee, 영화 마리앙투아네트 스틸컷]

◀MC MENT▶
1774년 루이 15세가 서거하고 마리의 남편이 루이 16세로 즉위했습니다. 이때 루이는 마리에게 프티트리아농 궁전을 선물했고 마리는 궁전을 개조하는데 막대한 세금을 쏟아부었습니다. 이로 인해 국민들의 분노를 점점 쌓여가고 여기에 1785년, 목걸이 사건이 발생합니다. 

◀NA▶
라모트 백작 부인이 대주교에게 접근해 왕비가 고가의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국왕 모르게 타인 명의로 구입하기를 원한다고 속여서 대리 구매를 하도록 유도한 후 중간에서 가로챈 사기 사건인데요. 라모트 부인의 사기 행각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왕비의 체면은 땅에 떨어졌고 국민들의 불만과 불신은 더 증폭되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여기에 더해 마리 앙투아네트와 스웨덴 귀족 한스 악셀 폰 페르센 백작의 염문이 확산되고 있었죠. 

[출처 = 픽사베이, 위키미디어, artvee, 영화 마리앙투아네트 스틸컷]
[출처 = 픽사베이, 위키미디어, artvee, 영화 마리앙투아네트 스틸컷]

국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고 1789년 7월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마리는 민중 선동가들의 대표적인 표적이 되었으며 백성들이 먹을 빵이 없다고 마리에게 외치자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 않느냐”라고 무심하게 뱉었다는 유명한 일화도 일파만파 퍼지게 됩니다. 

◀MC MENT▶
곧 국왕 일가는 혁명군의 포로가 되어 튈르리 궁전에 갇히게 되고 마리는 여생을 파리 감옥에서 보내야 했습니다. 그러다 1793년 1월, 루이 16세가 처형되었고 마리 역시 같은 해 10월, 혁명재판소에서 재판을 받고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최근에도 마리를 둘러싼 이미지에 대한 진실과 거짓 공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호화스러움과 외로움 그리고 사치. 그 역사의 중심 마리앙뚜에네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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