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자들 스마트폰에 잠입한 ‘트로이 방패’...마약 범죄자 등 소탕 [지식용어]

[시선뉴스 심재민 / 디자인 임수현 수습] 미국과 유럽 등의 경찰이 암호화된 전화를 이용한 대규모 국제 함정 수사‘트로이 방패’ 작전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800명이 넘는 조직범죄 관련 용의자를 체포해 국제적 이슈가 되고 있다. 

유럽연합(EU) 경찰기구인 유로폴과 미국 연방수사국(FBI) 관계자 등은 지난 8일(현지시간) 네덜란드에 있는 유로폴 본부에서 한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밝혔는데, FBI가 은밀히 배치한 암호화 전화를 이용한 이번 트로이 방패 작전을 통해 세계 16개국 경찰은 마약 거래, 무기 운반 등을 모의하는 범죄자들의 메시지를 볼 수 있었다. 이에 따라 마피아 단체, 아시아 범죄 조직 등 세계 각지의 범죄 조직이 경찰의 감시망에 들어오게 됐다.

이번 유로폴과 FBI의 ‘트로이 방패’ 작전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트로이 목마 작전에서 따왔다. 트로이 목마 작전은 무려 10년간 이어진 트로이 전쟁에 종지부를 지은 작전이다. 당시 아카이아 연합군은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의 아내 헬레네를 되찾기 위해 약 10년 동안 트로이와의 전쟁을 벌였다. 하지만 여러 차례 공격에도 트로이 성을 함락시키지 못한 채 지지부진한 공성전만을 반복하다가 여러 한계를 마주하고 말았다. 

그런데 이때 회심의 작전을 계획하게 되었는데, 바로 오디세우스가 내부에 사람 30명이 숨을 수 있는 거대한 바퀴 달린 목마를 만들어 트로이 성 안으로 침공하는 계획을 세운 것. 목마 안에 군사가 숨겨 있다는 것을 비밀로 해야 하는 것이 중점이었기에 목마를 만드는 대외적 이유를 전쟁의 여신 아테나에게 바치는 대규모 제사의 상징물 제작으로 내세우고 침공에 성공하게 된다. 

그리스 신화 속에 등장하는 트로이 목마 작전에 빗댄 트로이 방패 작전의 핵심은 범죄 집단의 스마트폰에 침공하기 위해 그들이 사용하는 ‘암호화 프로그램’을 만들어 배포하는 것이다. 여기서 암호화 된 프로그램이 바로 트로이의 목마에 해당한다. FBI는 이번 작전을 ‘트로이의 방패’라 불렀다. 

이 함정 수사는 미국 FBI와 호주 경찰이 공동으로 고안한 것으로, 당시 FBI는 범죄자들이 주로 사용하던 캐나다의 암호화 장치 회사를 해체하고, 범죄자들로 하여금 다른 의사소통 수단을 찾게 했다. 범죄자들은 늘 쓰던 암호화 프로그램 회사가 문을 닫자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 암호화 전화 네트워크 시장 공백을 뚫고 FBI는 2019년 'ANOM'이라는 암호화 장치 회사를 세웠다. 

이 회사는 100개 이상의 국가에서 300개가 넘는 범죄 단체가 이용하는 암호화 장비 업체로 성장했다. 이 상황을 알 리 없는 미국, 유럽 등에서 활동하는 범죄조직들 역시 당국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ANOM’이라는 이름의 스마트폰 암호화 프로그램을 사용했다. 이들은 이 프로그램을 스마트폰에 설치한 채 마약 수송에 관한 정보가 담긴 메시지와 사진, 오디오 정보 등을 주고받았다. 그렇게 범죄자들에게 전달된 1만2천 개가량의 장비를 통해 경찰은 범죄 활동과 관련한 대화와 사진, 정보를 수집, 감시, 분석해 수사할 수 있었다. FBI에 따르면 ANOM 프로그램에 약 2700만개 이상의 정보가 수집됐는데, 특히 범죄자들 중 일부는 식품 유통으로 위장한 화물 사이에 숨긴 마약 정보를 주고받기도 한 것이 발각되기도 했다. 

실제로 경찰은 트로이 방패 작전을 통해 800명 넘게 체포했고 700개 이상의 장소를 수색했으며, 8t이 넘는 코카인과 22t의 대마초, 4천800만 달러(약 536억원) 상당의 여러 통화와 가상화폐, 화기 등을 압수할 수 있었다. 

이러한 트로이 방패 작전에 대한 찬사가 이어지고 있다. 랜디 그로스먼 미국 캘리포니아 남부지방검사는 이날 “이번 사건은 규모가 컸고, 혁신적인 전략을 사용했으며 기술 및 수사 성과 측면에서도 전례없는 작전이었다”며 “아이러니 한 점은 이 범죄자들이 수사당국으로부터 숨는데 사용했던 바로 그 장치가 실제로는 수사당국의 장치였다는 점”이라고 평했다. 또 유로폴 관계자는 이날 이들 정보는 뉴질랜드, 호주, 스웨덴, 독일, 미국 등에서 수백 건에 이르는 국제적인 규모의 작전으로 이어졌다면서 이는 지금까지 암호화된 범죄 활동에 맞선 경찰 작전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정교한 수사의 하나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