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스의 아성을 넘어선 슈프림스 멤버 ‘메리 윌슨’ [인포그래픽_세계인물편]
비틀스의 아성을 넘어선 슈프림스 멤버 ‘메리 윌슨’ [인포그래픽_세계인물편]
  • 보도본부 | 이고은 pro
  • 승인 2021.02.27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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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뉴스 심재민/디자인 이고은 pro]

▶ 메리 윌슨 (Mary Wilson)
▶ 출생-사망 / 1944. 3. 6. ~ 2021. 2. 8.
▶ 국적 / 미국
▶ 활동분야 / 음악
▶ 주요작품 / '슈프림스 어 고고', '베이비 러브', '스톱 인 더 네임 오브 러브'

비욘세가 참가했던 데스티니스 차일드 등 수많은 걸그룹들이 영향을 받은 미국 역대 최고의 걸그룹 슈프림스의 멤버 메리 윌슨.

빈민가에서 키운 가수의 꿈
1944년 미시시피주에서 태어난 메리 윌슨. 그녀는 디트로이트의 빈민가의 열악한 노동자 집안에서 성장했고 그런 메리 윌슨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것은 다름 아닌 노래였다. 가수들의 노래를 듣고 따라 부르면서 자연스럽게 노래를 배운 메리 윌슨의 마음속에는 어느 덧 가수라는 꿈이 생겼다. 그녀는 넉넉하지 못한 가정형편 때문에 가수라는 꿈을 이루기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결코 꿈을 저버리지 않았고 꾸준히 노래 연습을 이어나갔다. 당시 원년 멤버인 윌슨과 다이애나 로스, 플로렌스 발라드는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들이었고 함께 노래를 즐겨 불렀다. 

슈프림스의 전신 ‘프라이미츠’ 결성
메리 윌슨과 친구들의 식지 않는 열정은 이내 꿈이 현실로 바뀌는 기적을 만들었다. 슈프림스의 전신이 된 '프라이미츠'라는 걸그룹에 참가한 것은 메리 윌슨이 15세 때인 1959년. 당시 인기가 높았던 남성 흑인 중창 그룹의 여성 버전이 목표였고, 그런 이들의 지향점은 대중들의 관심을 불러 모았다. 그렇게 점점 실력과 개성으로 똘똘 뭉친 프라이미츠에 대한 입소문은 미국의 대형 음반시장 기획사들의 귀에도 들어가기 시작했다. 

슈프림스 탄생...비틀스 제치고 빌보드 1위
그렇게 1962년 최고의 흑인 음악 제작사인 모타운 레코드와 계약했고 그 유명한 ‘슈프림스’라는 그룹이 결성되었다. 그리고 '모타운 사운드'로 불리는 팝적인 솔 음악을 앞세워 인종을 뛰어넘는 인기를 누렸다. 특히 1966년 여름에 발표한 앨범 '슈프림스 어 고고'는 빌보드 앨범차트 1위에 오르면서 화제가 됐다. 여성 그룹으로서 역대 최초로 앨범차트 1위에 올랐을 뿐 아니라, 1위 자리를 빼앗은 앨범이 당시 최고 인기를 자랑하던 비틀스의 '리볼버'였기 때문. 슈프림스의 인기는 점점 더 뜨거워졌고 이들은 1977년 해체할 때까지 '베이비 러브', '스톱 인 더 네임 오브 러브' 등 12개의 빌보드 싱글차트 1위 곡을 발표했다.

슈프림스 끝까지 지킨 메리 윌슨
이렇게 인기가 많았던 슈프림스지만 멤버 탈퇴 등 여러 변화를 겪으면서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하지만 메리 윌슨은 슈프림스를 끝까지 지켰다. 특히 슈프림스 멤버 중 가장 인기가 높았던 다이애나 로스가 1970년 솔로 활동을 위해 탈퇴한 뒤에는 윌슨이 그룹의 유일한 원년 멤버로서 자리를 지켰다. 이후 윌슨은 슈프림스가 완전히 해산 후, 솔로 가수로 활동하면서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NYT는 비욘세가 참가했던 데스티니스 차일드 등 수많은 걸그룹들이 슈프림스의 영향을 받았다고 평가했다. 그러한 이유로 슈프림스는 1988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최근 에스콰이어지는 슈프림스를 방탄소년단과 함께 역대 최고의 팝 밴드 10개 중 하나로 선정했다. 그 정도로 세계 팝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던 슈프림스 그리고 끝까지 슈프림스를 지켰던 원년 멤버 메리 윌슨은 2021년 2월 8일 향년 76세로 별세했다. 빈민가에서 노래에 대한 열정과 꿈을 놓지 않았던 세계적인 슈퍼스타 메리 윌슨은 팝 역사에 길이길이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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