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김아련 / 디자인 최윤수 pro] 1960년대 치즈라는 음식도 잘 알지 못하고 기술도 없던 상황에서 임실 지역을 살리기 위해 치즈 산업을 일궈낸 한 벨기에 출신의 선교사 신부가 있었습니다. 그는 바로 세스테벤스 디디에, 지정환 신부입니다.

1931년 벨기에에서 출생한 지정환 신부는 열 살 때, 예수회 사제관에서 순교자들의 사진을 구경하다 나중에 크면 신부가 돼 외국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것이 훗날 지정환 신부가 외방선교신부로 한국에 오게 된 계기입니다. 

1950년 루뱅대학에 입학한 지정환 신부는 철학과를 2년 동안 공부한 뒤, 루뱅 예수회 성알벨도 신학교를 졸업하고 1958년 3월 사제서품을 받았습니다. 당시 신학교에서 유학 중이었던 장병화 주교님과 국회의원 이효상씨의 영향을 받아 한국으로 선교를 오기로 결정했는데, 당시 그는 한국의 경제사정이 매우 좋지 않아 도움이 필요한 나라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런던에서 한국어 공부를 1년 동안 마친 뒤 전주교구로 발령받은 지정환 신부는 1961년 7월 부안 성당의 주임신부로 부임합니다. 

지정환 신부는 땅이 없던 부안 주민들을 설득해 불철주야 함께 일하며 30만평의 토지를 개간했고 그로 인해 100가정이 새로운 땅을 얻어 생활하게 됐습니다. 그러다 과로로 건강이 나빠진 후 1964년 요양을 위해 임실 성당으로 발령받게 됩니다. 

이때 농사에 적합하지 않았던 가난한 임실 농민들을 위해 지정환 신부는 신용협동조합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이 운동은 알뜰하게 돈을 저축하고 다른 사람들이 저축한 돈을 대출해 갈 수 있도록 마련한 것으로 농촌 사람들의 인식이 크게 개선됐습니다. 자연환경이 깨끗하고 목초가 풍부한 임실에서 산양들을 자유롭게 키우고 그 젖을 짜서 팔면 되겠다는 생각을 한 지정환 신부는 임실 청년들을 설득해 치즈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부모님께 자금을 후원받아 치즈공장을 만들었고 석 달 동안 프랑스에서 치즈제조기술을 직접 배워 1969년 마침내 치즈 제조에 성공했죠. 그리고 한국인들의 입맛에 맞는 체다치즈를 비롯해 모짜렐라 치즈까지 만드는데 성공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치즈는 유명호텔과 대기업 등에 정환치즈로 팔리기 시작했고, 조합장의 요청으로 지정환 신부의 초상권을 딴 지정환피자가 나오게 됐습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다발성신경경화증으로 인해 오른쪽 다리가 완전히 마비된 지정환 신부는 휠체어에 의지해 다니게 됐는데요. 이때 그는 자신처럼 고통 받는 장애인들을 위해 재활운동을 도와주는 시설인 무지개가족을 설립하게 됩니다. 

무지개가족은 처음 전주교구 사회복지회의 지원으로 전주시 인후동에 있는 아파트에서 시작해 현재는 전북 완주군에 위치한 복지 시설로 성장했습니다. 이곳에서는 중증 장애로 인해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어려운 사람들의 재활을 돕습니다. 

지정환 신부는 장애인들의 고통과 기쁨에 진심으로 동참할 수 있다는 것에 자신이 장애인이 된 것조차 감사하며 살았는데요. 그가 지금까지도 우리의 가슴에서 따뜻하게 기억되는 이유는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한평생 바친 그의 사랑 때문일 겁니다.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