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심재민 / 디자인 최윤수 pro]

▶ 피에르 가르뎅 (Pierre Cardin)
▶ 출생-사망 / 1922. 7. 2. ~ 2020. 12. 29.
▶ 국적 / 프랑스
▶ 활동분야 / 패션

세기를 넘나들며 프랑스와 세계에 독특한 예술적 유산을 남긴 기성복의 선구자이자, 패션계의 전설인 피에르 가르뎅. 

14살 작은 손에 든 실과 바늘 
피에르 가르뎅은 1922년 이탈리아에서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2살이던 해에 부모와 함께 프랑스로 넘어온 피에르 가르뎅은 프랑스 생테티엔에서 어린 나이인 14살에 처음 재단사로서 실과 바늘을 잡았다. 이후 피에르 가르뎅은 1944년 패션의 도시 파리로 올라와 유명 디자이너 밑에서 영화 촬영에 쓰는 의상 등을 제작하며, 어떻게 보면 디자이너의 길에 일찌감치 들어섰다. 이때 장 콕토 감독의 영화 '미녀와 야수'(1946)에 사용할 의상을 만들었고, 콕토 감독의 소개로 크리스티앙 디오르를 알게 돼 1947년 디오르의 "첫 번째" 재단사로 일했다.

파격적인 디자인의 기성복 이슈
1950년 자신의 브랜드를 내놓은 피에르 가르뎅. 그는 1954년 엉덩이 부분을 둥그렇게 부풀린 모양의 '버블 드레스'를 선보이며 유명세를 얻었다. 그리고 1959년 디자이너 중 처음으로 프랭탕백화점에서 기성복 컬렉션을 선보였다. 당시 피에르 가르뎅의 디자인은 그야말로 파격이었다. 특히 기성복이라는 딱딱한 틀 안에 파격과 담대함을 넣어 이목을 모았다. 특히 그의 손에서 빚어진 의상들은 디자인 자체가 기하학적 형태를 띠고 있거나, 기하학적인 문양을 품고 있어서 미래지향적인 '우주 시대 룩'을 창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피에르 가르뎅의 파격을 좋아하지는 않았다. 특히 기존의 기성복 전통을 고수하려는 단체로부터 비난을 사기도 했는데, 실제로 백화점 컬렉션 이후 파리의상조합에서 일시적으로 쫓겨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다양한 제품에 달린 이름 ‘피에르 가르뎅’
디자이너로서 각종 컬렉션을 통해 명성이 자자해지 피에르 가르뎅. 그는 1960년대부터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 셔츠를 비롯해 물병, 부동산 등 장르를 가르지 않고 수백가지 제품을 선보였다. 피에르 가르뎅이 한창 잘나갈 때에는 무려 1천개가 넘는 라이선스를 갖고 있었을 정도. 특히 피에르 가르뎅이 가장 잘나가던 1970년대에는 '피에르 가르뎅'이라는 브랜드를 달고 있는 상품들을 10만여개 매장에서 판매했다고 하니 당시로서는 그야말로 화제의 중심인 브랜드였다. 이에 대해 피에르 가르뎅은 “나는 내 와인을 마시고, 내 극장에 가고, 내 식당에서 식사하고, 내 호텔에서 자고, 내 옷을 입을 수 있어 자급자족이 가능하다”라는 근거 있는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영역을 펼치다
프랑스에서 시작한 피에르 가르뎅은 유럽은 물론 미국 사회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당시 사회 분위기상 동양과 서양은 알게 모르게 격차와 갈등이 존재했는데 피에르 가르뎅은 이를 관여치 않고 종횡무진하며 활동무대를 넓혔다. 그렇게 그는 1979년 중국 베이징(北京) 자금성에서 처음으로 패션쇼를 선보인 최초의 서양인이 됐고, 1991년 러시아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서 패션쇼를 올린 최초의 디자이너로 기록됐다. 이처럼 일찍이 동양 문화에 관심을 가졌던 그는 일본에서도 브랜드 입지를 공고히 했고 그의 이름이 걸린 상점은 100개국이 넘는 국가에서 찾아볼 수 있다. 피에르 가르뎅은 지난 2010년 한 인터뷰에서 "나는 아마 북한을 제외한 전 세계를 커버하고 있고, 내가 선택하면 그곳도 갈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 넘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노년까지 이어진 패션에 대한 ‘열정’
피에르 가르뎅은 지난 2012년 7월 90세의 나이로 컴백 작품 발표회를 가지는 등 노년까지 활발히 활동하며 그야말로 열정을 불태웠다. 그는 컴백 작품 발표회에서 "나는 아직 내일을 위한 가솔린(에너지)을 갖고 있다"면서 "이 일을 시작할 때 가장 어렸고 현재는 가장 나이가 많다. 나는 여전히 이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처럼 일평생 자신의 담대함과 열정을 패션을 통해 발휘하던 피에르 가르뎅, 기성복의 선구자로 불려온 프랑스 디자이너 피에르 가르뎅은 2020년 12월 29일 향년 98세로 생을 마감했다. 

14살에 처음 재단사 일을 시작해 구순이 넘어서도 무대에 섰던 피에르 가르뎅은 예술적 감각뿐만 아니라 이와 같은 남다른 사업 수완으로도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향수, 화장품, 선글라스, 손목시계, 침대 시트, 면도날, 초콜릿, 식당, 휴양시설…. 프랑스 패션계의 거장 피에르 가르뎅의 이름이 적혀있는 제품들은 여전히 전 세계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세기를 넘나들며 프랑스와 세계에 독특한 예술적 유산을 남겼고,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프랑스인 중 한명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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