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트리 음악의 인종 장벽을 깬 흑인 가수 ‘찰리 프라이드’ [인포그래픽_세계인물편]
컨트리 음악의 인종 장벽을 깬 흑인 가수 ‘찰리 프라이드’ [인포그래픽_세계인물편]
  • 보도본부 | 최윤수 수습
  • 승인 2021.01.23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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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뉴스 심재민 / 디자인 최윤수 수습]

▶ 찰리 프라이드(Charley Pride)
▶ 출생-사망 / 1938. 03. 18. ~ 2020. 12. 12.
▶ 국적 / 미국
▶ 활동 분야 / 가수
▶ 수상 / 1977년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최고 남자 컨트리 가수상

백인 일색이었던 미국 컨트리 음악계에서 인종 장벽을 깬 흑인 가수 찰리 프라이드. 그는 2000년에는 컨트리음악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 되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컨트리 음악을 사랑한 프라이드
미시시피주(州)의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난 프라이드. 그는 자라면서 라디오를 즐겨듣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블루스, 가스펠, 컨트리 음악에 자주 노출되었다. 그 중 유독 컨트리 음악에 대한 사랑을 남달랐던 프라이드는 14세에 첫 기타를 구입하고 라디오에서 들은 노래를 들으며 스스로 연주법을 익히며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꿈이 본격적으로 가수는 아니었다. 청소년 시절 프라이드는 메이저리그(MLB)의 첫 흑인 선수인 재키 로빈슨의 영향으로 야구선수를 꿈꿨다.

야구 선수로 활동하면서도 놓지 못한 음악의 꿈
실제로 프라이드는 야구 선수로 먼저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흑인 리그인 니그로리그에서 투수로 활약했고, 메이저리그(MLB) 캘리포니아 에인절스와 뉴욕 메츠의 문을 두드리기도 했다. 그렇게 1953년 프라이드 뉴욕 양키스의 C급 농장 팀인 보이시 양키스와 계약을 맺으며 본격적인 야구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그렇게 프라이드는 부상과 활동을 반복하며 특별히 눈에 띄지 않는 선수 생활을 했다. 그 과정에서도 프라이드는 음악에 대한 사랑, 그리고 기타를 놓지 않았으며 실제 몇 몇 경기에서 국가를 부르고 지역 커뮤니티, 교회, 나이트클럽 등에서 공연하며 음악을 늘 동경해 왔다. 

염증을 느낀 야구, 가수의 길로 들어서다
야구선수 생활을 하며 소소하게 해온 프라이드의 음악 활동이 점차 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몇몇 음악가의 소개로 이어지기도 했다. 특히 1962년 컨트리 가수인 Red Sovine과 Red Foley에게 소개되었고 그들의 무대에서 공연할 수 있게 초대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경험은 프라이드가 가수로 입문하는 데에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그렇게 프라이드는 1963년 뉴욕 메츠와의 비참한 트라이 아웃 이후 더 이상 야구로는 큰 성공을 할 수 없다고 느끼며 염증을 느꼈고, 음악에 대한 꿈을 본격화 한다. 그렇게 자신의 음악색과 맞는 음반회사를 찾아가 문을 두드리던 프라이드는 유망한 흑인 컨트리 가수를 적극적으로 찾고 있던 잭 존슨(Jack Johnson)을 만나는 행운을 잡게 되었다. 잭 존슨은 프라이드가 음반을 낼 수 있도록 적극 지원했고 그에 힘 입에 프라이드는 컨트리 음악 가수로 본격 데뷔했다. 

흑인 가수 최초로 빌보드 컨드리 앨범 차트 1위
프라이드는 1967년 발표한 '더 컨트리 웨이'(The Country Way)가 흑인 가수로는 최초로 빌보드 컨트리 앨범 차트 1위에 오르면서 스타가 됐다. 프라이드가 흑인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안 일부 컨트리 음악 전문 라디오 채널은 그의 노래 송출을 중단하는 식으로 차별행위를 했지만, 프라이드의 부드러운 목소리는 인종에 상관없이 팬들을 끌어당겼다. 그는 29곡의 컨트리 차트 1위 히트곡을 발표했고, 인종에 상관없이 최초로 컨트리음악협회(CMA)의 최우수남자가수상을 2년 연속 수상했다. 지난 2000년에는 컨트리음악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됐다. 

신화적인 컨트리 가수로서의 성공
흑인들에게 프라이드의 성공은 그야말로 신화였다. 이에 대해 프라이드는 생전 인터뷰에서 스타가 된 뒤에도 차별행위가 적지 않았다는 사실을 소개하기도 했다. 톰 존스가 불러 전 세계적인 히트곡이 된 '그린 그린 그래스 오브 홈'을 취입하려고 했지만, 가사 중 '금발의 메리'라는 대목 때문에 발목이 잡혔다는 일화가 대표적. 흑인 남자 가수가 백인 금발 여성에 대한 노래를 부르는 것은 사회적 금기였다는 설명이다. 그만큼 흑인 차별이 노골적이었던 시기 프라이드의 이례적인 성공은 그 자체로 흑인 차별 금지 등 인권 운동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백인 일색이었던 미국 컨트리 음악계에서 인종 장벽을 깬 흑인 가수 찰리 프라이드. 그는 2020년 12월 12일 86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뉴욕타임스(NYT)는 현지시간 13일 프라이드가 전날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코로나19 합병증으로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텍사스 레인저스의 구단주였던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프라이드는 위대한 목소리를 지닌 훌륭한 신사였다. 우리 부부는 그의 음악과 정신을 사랑한다"고 추모하는 등 전 세계적인 애도의 물결이 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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