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여행] 신라시대 때부터 역사 지켜봐온 ‘호암산성’...임진왜란 당시 주둔지 [서울 금천구]
[SN여행] 신라시대 때부터 역사 지켜봐온 ‘호암산성’...임진왜란 당시 주둔지 [서울 금천구]
  • 보도본부 | 심재민 기자
  • 승인 2021.01.02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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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뉴스 (서울 금천구)] 찬란하고도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우리 대한민국의 역사. 그래서일까 전국 각지에는 유구한 역사 속에서 국가의 희로애락을 지켜봐온 유적지가 다양하다. 한반도의 중앙인 서울 역시 지리적 요건 상 여러 역사적인 순간들을 지니고 있는데, 무려 신라시대 때의 군사적 긴장감을 엿볼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서울 호암산성이다.

ⓒ지식교양 전문채널-시선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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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암산성은 서울시 금천구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시기의 성곽 유적지이다. 관악산으로 연결되는 금주산 정상에 위치해 있으며 서울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인 만큼 역동의 역사를 묵묵히 지켜봐온 사적(제343호)이다. 특히 한강유역을 차지하고자 했던 삼국의 쟁패 및 당나라 군사를 물리치고자 했던 신라군사의 활동과 관련된 유적으로 임진왜란 때에는 조선군사의 주둔지가 되기도 하는 등 군사적 요충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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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암산성 터 ⓒ지식교양 전문채널-시선뉴스

호암산성에 가면 우선 테뫼식 산성의 흔적을 볼 수 있다. 해발325m 능선의 산마루를 둘러쌓은 통일신라시대의 테뫼식 산성으로 2014년 정밀현황측량(GPS) 결과 성곽의 둘레는 약1,547m, 면적은 69,689제곱미터로 확인되었다. 축성 시기는 삼국시대(6세기 후반~7세기 초반)로 추정하고 있다. 그 중 약 300m 구간에 성의 흔적이 현재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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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암산성 터 ⓒ지식교양 전문채널-시선뉴스

호암산성 유적지 외에 산 정상에 있는 ‘한우물’과 ‘석구상’도 상당한 가치가 있다. 먼저 한우물은  길이 22m, 폭12m의 연못으로 네 주변을 화강암으로 쌓았으며, 용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가뭄이 이어질 때 기우제를 지내고 전시에는 군용에 대비한 물을 가두어 두던 곳이다. 특히 임진왜란 때에는 선거이 장군이 진을 치고 행주산성의 권율 장군과 함께 왜군과 전투를 하면서 이 우물을 군용수로 사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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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암산성 '한우물' ⓒ지식교양 전문채널-시선뉴스

이 연못 모양의 우물이 만들어진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보수를 위한 발굴 당시 확인된 바로는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연못이 현재의 연못 밑에 묻혀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미루어 보면 옛 연못 위에 어긋나게 축석한 연못이 다시 조선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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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암산성 '석구상' ⓒ지식교양 전문채널-시선뉴스

한우물 동북방 50m 지점에는 동물석상 1구를 만날 수 있다. 해태상으로 보이기도 하나 해태로 보다는 개의 형상에 가깝고, 경기읍지(1956년) 등의 기록에 따르면 석구상으로 보는 것이 옳기에 그렇게 불린다. 이 석구상에는 전설도 담겨 있다. 조선 왕조의 도읍 설화와 관련되었는데, 경복궁의 해태와 마주보는 위치에 놓아 관악산의 화기를 누름으로써 서울 장안의 화재를 막기 위해 세워졌다고 전해진다.

ⓒ지식교양 전문채널-시선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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