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조재휘] 세계 최대의 프로레슬링 단체 WWE의 회장 겸 CEO이자 대주주로 프로레슬링에 엔터테인먼트 요소를 적극적으로 도입해 WWE를 프로레슬링의 표준으로 제시한 사람이 있다. 일개 레슬링 프로모션 단체를 세계 굴지의 기업으로 만들었으며 프로레슬링을 전 세계적으로 알리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인물. 바로 ‘빈스 맥마흔’이다.

아버지로부터 회장직을 물려받다

[사진/Wiki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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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스는 1968년 이스트 캐롤라이나 대학 졸업 후 그다음 해부터 링 아나운서로 출연했다. 원래 레슬링 선수를 지망했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링 아나운서부터 시작했다. 이후 아버지 빈스 맥마흔 시니어가 건강 악화로 그의 회사였던 캐피탈 레슬링을 자신의 회사인 타이탄 스포츠로 인수하여 WWE의 회장직을 물려받았다. 빈스는 레슬마니아 같은 대형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며 WWE를 특급 프로레슬링 단체로 끌어올렸다.

세계 최대 프로레슬링 기업 WWE

[사진/Wiki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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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프로레슬링은 1970년대까지는 B급 스포츠로 여겨졌지만 빈스가 엔터테인먼트 요소를 내세우며 WWE를 세계 최대 프로레슬링 기업으로 키운 것이다. 빈스가 링 아나운서로 활동하던 시절, 사실 그는 해설자로서 이름이 더 알려졌다. 자신이 각본을 쓴 만큼 멘트를 언제, 어떻게 날려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 경쟁하던 WCW와의 시청률 경쟁에 부진을 면치 못하게 되자 빈스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게 된다. 바로 WWE 쇼에 참여해 악덕 기업주 캐릭터로 활동하기 시작한다. 

악덕 회장 이미지로 활동

[사진/Wiki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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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더 락’, ‘켄 샴락’ 등의 레슬러들로 구성한 스테이블 팀 코퍼레이션과 당시 서민들의 영웅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하던 ‘스티브 오스틴’과의 대립에 들어가며 본격적으로 스토리라인에도 등장하게 된다. 회장이 직접 링에 오르게 된 것이다. 레슬러들의 스테로이드 오남용 사망 사건으로 인해 청문회에서 증언한 흑역사 등과 더불어 제대로 악덕 회장 이미지가 잡히며 서민들의 영웅 캐릭터들과 대결 구도를 형성해 큰 인기를 모았다. 물론 여러 굴욕의 모습들을 보여주기도 했다.

WWE의 성장

[사진/Wiki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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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스는 2000년대에 들어서 레슬마니아 시청 가능 연령을 낮춰 새로운 시청자 층을 확보하고 다양한 캐릭터들을 개발하며 매출을 늘렸다. WWE는 WWE 네트워크를 출범시키는 등 온라인 시장에도 진출했으며 프로레슬링 단체로는 유일하게 뉴욕증권거래소 상장회사이기도 하다. WWE가 국내에서도 한창 인기 많았을 시기인 2002~2005년도까지는 WWE가 한국 투어도 자주 했었다.

열렬한 공화당 지지자

[사진/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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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스는 백인 부유층에 애국심 마케팅을 내세우는 WWE의 회장답게 열렬한 공화당 지지자이기도 하다. 친분이 있는 트럼프의 대통령 출마와 함께 당선 이전부터 지속적으로 공화당에 개인 사재로 기부금을 납부하거나 부인인 린다 맥마흔도 트럼프 정권 1기의 중소기업청장에 내정되었다. 빈스는 지난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 선거캠프에 600만달러를 후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2002년 세계자연보호기금과의 상표권 분쟁 소송에 패소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여전히 회장직을 맡으며 건재하고 있는 ‘빈스 맥마흔’. 아직도 그가 최고의 위치에 있으면서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관심 분야에 대한 덕후스러운 모습이었다. 프로레슬링은 쇼라고 인정하며 지금도 자기 관리에 충실한 그의 모습은 분명 본받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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