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박진아 / 디자인 최윤수 수습] 전라남도 땅끝 녹동항에서 배로 5분 거리 정도에 소록도라는 섬이 있다. 면적이 4.46km 밖에 되지 않는 이 작은 섬에는 모양이 사슴과 비슷해 소록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그런데 이 작은 섬은 일제강점기 한센병 환자들을 격리하고 수용하는 시설로 사용되었던 곳이었다. 이곳에서는 환자들의 아픔과 고통, 한이 맺힌 머나먼 섬 소록도에서 사랑을 실천한 두 외국인 수녀 간호사가 있었다. 바로 ‘마리안느와 마가렛’이다. 

오스트리아에서 온 간호사 마리안느 스퇴거와 마가렛 픽사렉은 1960년대부터 무려 40여 년 간 한센병 환자들을 돌봤다. 간호학교 동기였던 둘은 20대에 소록도로 직접 자원해 들어온 것. 

43년간 소록도에서 봉사활동을 한 마리안과 마가레트 수녀. 오스트리아 간호학교를 나온 두 수녀는 소록도 병원이 간호사를 구한다는 소식이 소속 수녀회에 전해지자 1962년과 66년에 차례로 소록도에 왔다. 

그들은 환자들이 말리는데도 약을 꼼꼼히 발라야 한다며 장갑도 끼지 않고 상처를 치료했는데, 오후엔 죽도 쑤고 과자도 구워 들고 마을을 돌며 환자들을 돌봤다. 전라도 사투리에 한글까지 깨친 두 수녀들. 그들을 보고 사람들은 ‘할매’라고 불렀다. 

두 수녀의 꽃다운 20대는 수천 명의 한센병 환자의 손과 발로 살아가며 어느새 일흔을 지난 할머니가 됐다. 그들의 노고에 정부 또한 감사함을 전하려고 했지만 마리안느와 마가렛은 상이나 인터뷰를 번번이 거절한다. 

심지어 오스트리아 정부 훈장은 주한 오스트리아 대사가 섬까지 찾아와서야 이들에게 줄 수 있을 정도였다. 병원 측이 마련한 회갑잔치 까지도 이들은 “기도하러 간다”고 말하며 자리를 피했다. 

두 수녀는 본국 수녀회가 보내주는 생활비까지 환자들의 우유와 간식비, 그리고 성한 몸이 돼 떠나는 사람들의 노자로 나눠줬다. 이런 정성 때문이었을까... 처음 이들이 소록도에 갔을 때 환자가 무려 6,000명에 달했지만 40년 동안 정성을 쏟은 결과 소록도의 환자는 600명 정도로 크게 줄어들게 된다. 

그러던 2005년 11월 22일, 마리안느와 마가렛은 편지 한통만 남긴 채 소록도를 떠났다. 나이가 들어 거동이 불편해지자 ‘소록도에 불편을 주기 싫기에 고국으로 돌아간다’는 말을 전하고 말이다. 

그들이 남긴 말에는 ‘한국도 이제 사회 복지 시스템이 잘 마련돼 마음 놓고 떠난다’라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40년을 넘게 헌신해온 그들이 있었기에 우리나라의 복지 시스템도 구축될 수 있었던 것일텐데, 그들은 마지막까지 그들이 한 일에 대해서는 조금도 자랑하거나 내세우지 않았다.  

마리안느와 마가렛은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라는 성경의 말씀을 한평생 동안 실천한 사람들이었다. 마리안느와 마가렛... 두 수녀는 소록도의 아름다운 천사들로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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