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김아련 / 디자인 최윤수 수습]

▶ 장영실
▶ 출생-사망 / 1390년경~?
▶ 시대 / 조선시대
▶ 활동분야 / 과학자

조선 세종 대에 활약한 장영실은 노비 출신으로 궁중기술자가 되어 천체의 위치를 살피는 혼천의와 시간을 측정하는 물시계를 발명했고 과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 어릴 때부터 기구를 만지는 재능이 있던 장영실

장영실은 태종과 세종대에 살았던 인물로 그의 과학적 업적은 ‘조선왕조실록’에 여러 번 나와 있지만 정확히 출생과 말년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다. ‘세종실록’에는 장영실의 아버지에 대해 원나라의 소주·항주 사람이었으며 어머니는 기생이었다고 기록돼 있다. 한편 아산 장씨 족보에는 ‘세종실록’의 기록과 다르게 아버지 장성휘가 조선에 귀화한 중국인이 아니라, 고려 때 송나라에서 망명한 이후 한반도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았던 귀화인의 후손이라고 되어 있다.

그는 관노 출신이었던 모친의 신분에 따라 어머니의 신분을 따르게 되었다. 노비 출신에도 불구하고 남다른 재주를 가지고 있던 장영실은 어릴 때부터 자신이 살던 경상도 동래현에서 부서진 농기구나 무기를 고치는 것은 물론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기구를 만들어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 천체의 위치나 움직임을 살피는 혼천의 발명

그러던 중 세종대에 들어서 나라의 발전을 위해 인재를 키우려는 정책이 시행됐고, 장영실은 그 재능을 인정받아 세종대왕의 특별 지시로 궁중기술자 자리에 올랐다. 이후 장영실은 중국으로 유학을 가게 돼 각종 천문 기구를 익혔다. 그리고 조선으로 돌아와 별의 움직임을 살피고 이를 기록할 수 있는 기구를 만들라는 명을 받게 됐고, 다른 학자들과 함께 새로운 관측기구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1433년에 천체의 위치나 움직임 등을 살피고 기록하는 기구인 간의와 혼천의를 만들었다. 혼천의를 이용하면 절기에 따른 태양의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이러한 발명을 통해 세종은 백성이 하나로 연결되는 왕도정치에 다가갈 수 있었다.

- 물을 넣은 항아리로 시간을 측정한 자격루 발명

시계가 없던 옛날에는 태양광선에 따른 해 그림자를 통해 하루의 시간을 쟀고, 밤에는 하늘의 반짝이는 별자리 움직임을 통해 시간을 쟀다. 그런데 날씨가 흐리거나 비가 오는 날에는 이러한 방법을 쓸 수 없어 장영실은 시계를 고안했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물시계인 자격루다. 

자격루는 물을 넣은 항아리 한 귀에 작은 구멍을 뚫어 물방울이 하나씩 떨어지는 것을 다른 항아리에 받아 일정하게 늘어난 부피를 자로 재어 12등분을 하고, 한 시간의 길이를 측정한 방식이다. 이렇게 해의 위치를 관측한 혼천의와 물을 이용한 시계인 물시계를 통해 절기에 따른 태양의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있었고, 농사를 짓는 백성들의 삶도 더욱 편해졌다.

- 역사 속에서 15세기 최고 과학자로 남은 장영실

이렇게 장영실은 여러 과학 기구들의 발명으로 세종의 신임을 얻게 됐고, 능력 있는 기술자로 인정받았다. 그 후 1442년 장영실은 임금이 타게 될 가마인 안여의 제작 과정을 감독했는데, 세종이 강원도 행차 날에 이를 타고 가는 과정에서 안여가 부서지게 된다. 

이에 대한 책임을 장영실이 지게 됐고 이후의 행적은 묘연한 상태로 기록되어지지 않았다. 이렇게 역사 속에서 장영실은 노비 출신에서 등용돼, 뛰어난 재능을 인정받아 종 3품의 벼슬까지 오르게 되었고 15세기 최고의 과학자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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