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사회과학자들 사이에 큰 영향 미친 ‘막스 베버’ [인포그래픽_세계인물편]
독일 사회과학자들 사이에 큰 영향 미친 ‘막스 베버’ [인포그래픽_세계인물편]
  • 보도본부 | 최윤수 수습
  • 승인 2020.11.21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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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뉴스 조재휘 / 디자인 최윤수 수습]

▶ 막스 베버(Max Weber)
▶ 출생-사망 / 1864. 04. 21. ~ 1920. 06. 14.
▶ 국적 / 독일
▶ 활동 분야 / 사회학, 경제학, 정치학 등 

마르크스주의의 영향력이 냉전 이후 상당히 축소된 현대 정치학계나 사회학계에서 뛰어난 영향력을 끼친 학자로 평가받는 ‘막스 베버’. 사회학 성립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마르크스의 경제결정론을 비판하고 이를 극복하고자 했다. 

- 다방면으로 접한 학문
8남매 중 맏아들로 태어난 베버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하이델베르크 대학에 입학해 아버지를 따라 법학을 전공하였으나 그 외에도 경제학, 역사학, 철학, 신학 등도 함께 공부했다. 베버는 병역을 마치고 베를린 대학으로 옮겨 학업을 이어나갔다. 

- 대학에서의 교수 생활
베를린 대학에서 <중세 상업 사회의 역사>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1891년에는 <국가 공법 및 사법의 의미에서 본 로마 농업사>라는 취직논문을 발표하였다. 이 논문은 로마 제국의 농업에 관한 중요한 연구로서 후세의 학자들에게 많은 자극을 주었다고 평가되고 있다. 취직논문으로 베버는 베를린대학에서 교수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베를린 대학에서 학위를 받은 다음부터는 점점 경제학 연구에 몰두했으며 그 시기 쓴 논문들도 경제학에 관련된 주제가 많았다. 

- 질병으로 인한 휴식과 요양
정치인이자 법률가였던 베버의 부친은 독실한 프로테스탄트 신자였던 모친과 상반된 경향을 보였다. 그래서 베버는 그 사이에서 혼란을 느꼈으며 특히 아버지와 갈등이 많았다. 아버지와의 충돌과 아버지 죽음 이후 여러 스트레스로 인해 정신장애를 겪은 베버는 심한 신경쇠약을 겪고 거의 6년 가까이 휴식과 요양으로 보내게 된다.

- 신경쇠약 이후의 논문 저술
신경쇠약 이후부터 베버는 사회학으로 이행하게 되며 <사회과학과 사회정책의 객관성>이라는 중요한 방법론 논문을 집필한 후 역작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저술한다. 이 시기가 그의 연구 생활에 있어서 가장 소득이 많은 시기라 할 수 있다. 그의 나이 50세에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군무를 지원해 야전 병원에 근무하기도 했지만 제1차 세계대전에서의 독일의 비참한 패배와 굴욕적인 강화조약에 충격을 받고 1918년에는 다시 대학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강의를 하며 시간을 보내지만 건강이 다시 악화되어 스페인 독감으로 56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다.

- 베버의 사상
베버는 독일 사회과학자들 사이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생전에는 연구 결과를 책 형태로 출판한 것이 거의 없었고, 그가 발행한 잡지들이 대부분 전문 학자들을 독자로 했기 때문에 죽은 다음에야 비로소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베버는 사회를 체험하거나 지각할 수 있는 일정한 형태와 성질을 갖추지 않은 헛된 개념으로 보았고 사회(집단)의 현상이 아닌 구성원(개인)의 행위를 중시했다.

인류의 역사는 생산 관계의 모순에 저항하는 프롤레타리아의 계급 투쟁으로 발전하며 결국 사회주의의 형태로 옮아간다고 주장하는 마르크스의 이론 역시 ‘막스 베버’의 비판 대상이 되었다. 베버는 19세기 후반기의 서구 사회과학의 발전에 크게 공헌하였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철학이나 사회학 등에서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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