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김아련] 미혼모나 미혼부는 한부모의 하위 개념으로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로 아이를 낳은 여자나 남자를 말한다. 2000년대 이후 저출산 문제가 대두되면서 국내 입양사업이 추진되고 미혼모들을 돕는 시설들도 많이 생겨났다. 오늘은 미혼모들의 사회적인 활동을 하는데 앞장서고 있는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PART1. 한국 미혼모들의 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탄생한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란 어떤 단체인가요?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제공]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제공]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는 리처드 보아스 미국인 박사에 의해 2007년 설립됐습니다. 2012년에 사단법인으로 틀을 갖추어 활동을 지속하고 있고,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미혼모가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는 여건을 만들기 위해 미혼모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열심히 뛰어 왔습니다.

-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는 어떤 계기로 생겨났나요?

네 처음 리처드 가족은 1988년 한국에서 여자 아이를 입양했습니다. 그 아이는 지금 대학생이 됐고, 입양한 딸을 키우면서 국제입양 옹호자가 되었습니다. 2005년 입양재단을 설립해 국제입양을 원하는 미국의 가정에 재정적 지원을 했습니다.

그런데 2006년 10월 한국을 방문해 미혼의 임신한 여성들이 모두 아이를 낳기도 전에 포기하는 것을 목격한 이후 관점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원해서 아이를 포기하는 여성은 하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미혼모들이 입양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은 경제적으로 지원이 없고 사회적 압력에 의해 아이를 포기해야 한다고 느끼기 때문이었습니다. 리처드가 입양한 아이의 엄마도 이들 중 한 명이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후 입양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고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를 설립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제공]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제공]

- 우리나라 미혼모들의 실태는 어떤가요?

해외입양은 한국전쟁이후 고아와 혼혈아동을 구제하기 위한 임시조치로 도입되었지만, 지난 60년 동안 사회적 편견과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한 많은 미혼모들이 양육을 포기하고 자녀에게 더 나은 기회를 제공하려는 수단으로 활용되어 왔습니다.

최근에는 자녀를 양육하려는 미혼모가 증가하고 미혼모 지원에 대한 정부와 사회적 관심도 서서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미혼모의 대다수는 여전히 극도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임신한 청소년은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하고, 직장을 다니던 여성도 빈곤의 세계로 추락하게 됩니다. 한편 빈곤과 차별에 맞서 홀로 아이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들에게 끊임없이 돌아오는 것은 사회적 낙인과 냉대뿐이며, 이들을 위한 따뜻한 관심이 필요합니다.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제공]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제공]

-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에서는 어떤 활동들을 하나요?

지난 2008년 9월 서울사무소 개소와 함께 양육미혼모들을 위한 권익 옹호 및 사회적 편견 불식을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이후 미혼모 관련 연구 지원, 미혼모에 대한 편견 개선과 미혼모 자립을 위한 사업 지원, 포럼 및 심포지움 개최 및 지원, 언론 홍보, 미혼모 지원단체들과의 네트워크 형성 등 다양한 활동을 해왔는데요. 그동안 감춰졌던 미혼모 관련 이슈를 공론화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제공]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제공]

해외입양이 많이 시행됐던 한국전쟁 이후에 비해 우리나라의 경제적인 여건은 많이 발전했지만 미혼모를 향한 사회적인 편견과 차별은 여전하다. 그러나 이들은 꿋꿋이 아이를 포기하지 않고 열약한 상황 속에서도 아이를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다음시간에는 이렇게 정서적으로 불안한 미혼모들을 위해 여러 지원을 하고 있는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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