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박진아 / 디자인 최지민] 최근 다양한 매체에서 아름답고 자유로운 국가로 비춰지는 쿠바. 하지만 쿠바는 과거 어둠의 땅이었다는 사실.

쿠바는 1902년 미국과 스페인과의 전쟁 후 독립했지만 실질적으로 토지는 미국자본이나 쿠바의 대지주들에게 속해있었기 때문에, 국민들은 힘들고 궁핍한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특히 독재정권의 부패가 심해 민중봉기가 여러번 일어났지만 실패했습니다.

그런데 쿠바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지금의 쿠바로 성장하는데 큰 공을 세운 한 외국인 혁명가가 있었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바로 쿠바의 영웅으로 불리는 체 게바라입니다!

체 게바라의 본명은 에르네스토이며 아르헨테나의 백인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25살에 의사학위를 취득해 편안하고 안정된 의사의 길을 갈 수도 있었지만 그는 아르헨티나를 떠나 진보정권을 이룬 과테말라로 이주했습니다.

체 게바라의 과테말라 생활은 평탄하지만은 않았는데요. 아르마스 독재정권의 핍박을 받아 부인과 함께 멕시코로 망명해 쿠바의 혁명가이자 정치가인 피델 카스트로와 인연을 맺게 됩니다. 피델 카스트로와 인연은 체 게바라의 인생에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이들은 투쟁 초반에 산간지역을 돌아다니며 게릴라 운동을 이어갔는데요.

쿠바 내의 반정부세력과 협력해 반군의 세력은 급격하게 커지게 됐습니다. 그리고 체 게바라가 지휘하던 군대는 산타클라라에서 쿠바 민중들의 큰 지지를 얻게 되었죠. 이것을 계기로 반군들은 수도 아바나로 가는 길목을 열게 되었고 1959년 드디어 반군들은 바티스타 정권을 무너뜨리고 쿠바혁명에 성공했습니다.

그 후 함께 혁명을 주도했던 피델 카스트로는 쿠바의 총리로 취임했고 체 게바라는 그동안 세운 공으로 쿠바의 국민이 되어 피델 카스트로 정부의 각료로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체 게바라는 쿠바 정권에서 라 카바니아 요새 사령관, 쿠바국립은행 총재, 쿠바 산업부 장관으로 일하면서 쿠바의 두뇌라고 불렸습니다.

영원한 동지일 것 같았던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 하지만 체 게바라와 피델 카스트로의 인연은 영원하지 못했습니다. 쿠바에서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며 활발한 활동을 해오던 체 게바라는 미국이나 소련으로부터의 완전한 독립을 원했지만, 반대로 카스트로는 강대국의 지원을 받기를 원했고 결국 둘은 신념 차이로 갈라서게 됩니다.

쿠바를 떠난 체 게바라는 투쟁이 일어나고 있는 콩고에서 혁명군에 가담했습니다. 하지만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체 게바라는 낯선 외국인으로 인식되어 융화되지 못했고, 이후 체 게바라는 급격한 하향길을 걷게 됩니다. 하지만 체 게바라의 혁명 정신은 식을 줄 몰랐습니다.

결국 그는 다시 남미의 볼리비아로 돌아와 혁명운동에 힘을 보탰지만, 안타깝게도 볼리비아 민중의 지지를 얻지 못했고 결국 독재정부군에 체포되어 총살을 당해 생을 마감했습니다.

항상 열정적이고 정의로운 길에 몸을 아끼지 않았던 체 게바라는 자신의 일생을 혁명운동에 바쳤습니다. 그의 꿋꿋한 혁명 정신은 세상을 떠난 후에 후대 사람들에게 큰 가르침을 줬는데요. 특히 1968년 프랑스의 학생들과 근로자들이 일으킨 사회변혁운동인 68혁명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20세기 가장 완전한 인간’ 프랑스 철학자 사르트르는 체 게바라를 이렇게 평가합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다양한 기록으로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 깊이 남아있는 체 게바라. 그의 쿠바를 향한 숭고한 희생과 정신은 후세에도 사라지지 않고 길이길이 기억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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