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전남 강진)] 거중기를 이용해 수원 화성을 짓고, 정조의 총애 속에 살던 조선의 실학자 정약용. 정조가 죽자 1801년 신유박해때 신하들의 모함에 의해 투옥되고 강진으로 유배를 가게 된다. 사의재에서 4년을 지내고 고성사의 보은산방, 제자였던 이청의 집등을 전전하다 1808년 윤규로의 제의로 정약용은 귤동의 초당으로 와 11년의 유배생활을 보내게 되는데 이곳이 바로 전남 강진의 다산초당이다.

ⓒ지식교양 전문채널-시선뉴스(사진제공-이경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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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8년부터 1818년까지 정약용이 머물렀던 이곳 다산초당은 정약용이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 500여권의 저서를 남긴 곳이다. 본래 ‘초당’이라는 이름처럼 원래는 초가집이었지만, 훗날 폐허가 되어버린 집터에 1957년 복원되며 기와집으로 지어졌다. 초당에 걸린 현판은 모두 추사 김정희의 글씨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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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조, ⓒ지식교양 전문채널-시선뉴스(사진제공-이경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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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초상화, ⓒ지식교양 전문채널-시선뉴스(사진제공-이경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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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지 석가산, ⓒ지식교양 전문채널-시선뉴스(사진제공-이경재)

뿌리의 길을 따라 오르면 제일먼저 만나는 건 서재이다. 서재를 지나 오르면 그제야 다산초당을 만날 수 있다. 초당에는 다산의 초상화가 모셔져 있으며, 추사 김정희의 다산초당과 보정산방의 현판이 걸려있다. 또 이곳의 4경으로는 정약용이 직접 새겼다는 ‘정석(丁石)’ 두글자가 새겨진 바위와 직접 만든 연못인 연지석가산, 다산이 물을 떠 먹었던 약천, 채소와 꽃나무를 가꾸던 단과 솔방울을 태워 차를 끓였다는 다조 등 정약용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온갖 자연물 속에 묻어있는 정약용의 자취를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는 포인트다.

ⓒ지식교양 전문채널-시선뉴스(사진제공-이경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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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근처에는 그 외에도 흑산도로 귀양 간 동생 정약전을 그리며 올랐다는 곳에 지은 천일각, 천일각 옆으로 혜장선사와 친분을 나누며 다녔던 만덕산을 넘어 백련사로 이어지는 오솔길도 있다. 이 오솔길은 유흥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도 실려 유명한 길이기도 하다.

ⓒ지식교양 전문채널-시선뉴스(사진제공-이경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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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초당에서 오솔길을 따라 이동하다보면 백련사에 다다를 수 있다. 가는길에 동백나무가 많아 동백꽃이 필 무렵에 가면 좋다. 그리고 근처에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의 저자 김영랑의 생가도 있어 같이 들려보면 좋다.

읍사무소에서 9-3번 버스를 타고 신평에서 내린 후 20분 정도 이동하면 다산초당에 도착 할 수 있다. 자차를 사용한다면 다산기념관 주차장에 주차하고 걸어 올라가거나 다산초당 초입에 있는 작은 주차장을 이용 할 수 있다. 코로나19가 지나가고 동백이 필 다음 봄에 가벼운 마음으로 그 옛날 다산과 함께 백운사로 가는 길을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

아름다운 사진 '이경재'님께서 제공해주셨습니다.

*시선뉴스에서는 여러분의 아름다운 사진을 제공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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