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김아련/디자인 최지민]
▶ 장 칼뱅 (Jean Calvin)
▶ 출생-사망 / 1509년 7월 10일 ~ 1564년 5월 27일
▶ 국적 / 프랑스
▶ 활동분야 / 종교개혁가
장 칼뱅은 2세대 종교개혁가로 개신교적 발언으로 쫓기는 신세가 됐다가 제네바에서 본격적으로 종교개혁에 이바지했다.
- 법학을 공부하다 일생을 신에게 봉사하기로 다짐
칼뱅은 1509년 프랑스 노용(Noyon)에서 변호사였던 아버지와 귀족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넷째아들로 태어났다. 당시 노용 지역은 종교적 분위기가 유난히 강했던 도시였는데 대성당 외에도 교회당이 많아서 어딜 가든 교회나 성직자를 볼 수 있었다. 칼뱅의 아버지는 그가 변호사가 되길 바랐지만, 그는 신학공부를 선택했다.
그는 1523~1528년 파리에서 신학을 공부했고, 이후 오를레앙 부르주의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학문에 열의를 보였지만 칼뱅은 1533년 법학 공부가 끝나갈 무렵 “주께서 갑작스레 나의 마음을 돌리셨다. 나는 곧바로 새로운 길을 달려가려는 열망에 불탔다. 다른 공부를 손에서 놓치는 않았지만, 더 이상 전처럼 열의를 가질 수가 없었다.”고 전하며 일생을 신에게 봉사하기로 다짐했다.
- 개신교적인 발언으로 수배령이 내려져 쫓기는 신세가 된 칼뱅
당시 칼뱅은 파리 대학의 학장이었던 니콜라스 콥과 친분이 있었는데, 콥의 취임 연설문을 함께 작성했다. 그런데 1533년 11월 1일 열린 만성절 기념사에서 칼뱅의 개신교적인 발언이 들어간 취임 연설문은 큰 파장을 몰고 왔다. 보수적인 파리 대학 교수들은 심하게 분노했고 칼뱅은 수배령이 내려져 쫓기는 신세가 됐다.
더 이상 프랑스에 머물 수 없게 된 그는 노용, 앙굴렘, 푸아티에 등을 전전했다. 이후 칼뱅은 스위스 바젤에 머물면서 가톨릭주의자들에 의해 박해받는 고국의 개신교 신자들을 변호하기 위해 1536년 ‘기독교강요’를 출판했다. 그의 대표작이라 불리는 ‘기독교강요’는 칼뱅의 폭넓은 문헌지식과 날카로운 해석 능력을 바탕으로 개신교의 기본정신과 교리를 체계적으로 정리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 제네바에서 본격적인 종교개혁에 들어간 칼뱅
칼뱅은 1536년 8월 잠시 쉬어갈 생각으로 제네바에 머물렀는데, 거기서 다른 종교개혁가인 기욤 파렐을 만나게 된다. 칼뱅은 학자로 평생을 지낼 생각이었지만 파렐은 그에게 제네바를 위해 헌신해달라고 부탁했고, 결국 파렐의 제안을 받아들인 칼뱅은 제네바에서 ‘성서 강해 교수’라는 직함을 얻었고, 시민들의 생활을 경건하게 만들기 위한 본격적인 종교개혁 작업에 들어갔다.
- 칭의와 거룩한 생활을 강조한 장 칼뱅
당시 로마교회는 사람이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는 회개, 고백, 선행 등 행동과 교회 사제의 사면, 징계 등의 조치가 개입된다고 여겼다. 그러나 종교개혁가들은 생각이 달랐는데 사람은 스스로의 선행으로도, 교회의 사면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으며 오직 신에 대한 믿음으로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여겼다.
이렇게 칼뱅은 믿음과 회개를 강조한 ‘칭의’와 거룩한 생활을 통한 균형 잡힌 사상을 부각시켰다. 그는 참된 교회로 나아가기 위한 방법으로 예배의 회복을 강조했는데 말씀선포, 구제, 성만찬, 기도(찬양)가 예배의 네 요소라고 보았다. 2세대 종교개혁자였던 칼뱅은 교회뿐 아니라 세상까지 신의 뜻에 합당한 공동체가 되기를 바랐고, 이에 따라 사회와 정치의 구조를 개혁하기 위해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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