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심재민/디자인 최지민]

▶ 리언 플라이셔 (Leon Fleisher)
▶ 출생-사망 / 1928. 7. 23. ~ 2020. 8. 2.
▶ 국적 / 미국
▶ 활동분야 / 피아니스트

오른손 마비를 극복해낸 천재 음악가 ‘리언 플라이셔’. 4세 때부터 탁월했던 음악적 재능과 포기를 모르는 열정으로 평생 건반을 놓지 않은 ‘왼손의 피아니스트’

천재 음악가의 탄생

1928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난 리언 플라이셔. 그는 타고난 음악적 재능을 바탕으로 언어를 익히기도 전부터 연주를 하기 시작했다. 특히 4살 때부터 본격 연주 생활을 시작했고, 6살이 되던 해 이미 첫 공개 연주회를 열기도 했다. 천부적인 재능에 어린 나이답지 않은 열정, 거기에 큰 무대 경험까지 더해지며 리언 플라이셔의 실력은 무서울 정도로 성장해 나갔다.

그렇게 15세가 되던 해 지휘자 ‘피에르 몽퇴가’로부터 “세기에 한 번 나올 만한 피아노 신동”이라는 극찬을 받았으며, 16세에 불과했던 1944년 세계적으로 유명한 뉴욕 필하모닉과의 협연으로 데뷔하며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당시 최고의 피아니스트였던 아르투르 슈나벨의 제자가 되어 가르침을 받기도 했는데, 슈나벨은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한 것으로 유명했지만 리언 플라이셔의 천부적인 재능에 반해 제자로 삼았다고 전해진다.

미국 음악사에 있어서의 자랑 ‘리언 플라이셔’

어린 나이부터 세계적인 무대에서 찬사를 받아온 천재 피아니스트 리언 플라이셔는 24살이 되던 해 미국 음악사에 있어 한 획을 긋게 된다. 1952년 세계 3대 콩쿠르 중의 하나인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우승한 것. 당시 미국인 클래식 연주가가 국제 콩쿨에서 처음으로 우승했다는 사실은, 마치 우리나라의 방탄소년단이 빌보드 차트를 휩쓴 것 만큼 충격적이었다. 그렇게 세계 곳곳의 러브콜을 받은 리언 플라이셔는 1959년 브루노 발터와 함께 한 유럽과 미국 순회공연 후 31세의 나이로 피바디 음악원의 교수가 되었다. 1959년부터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을 지낸 조지 셀과 녹음한 브람스, 베토벤 협주곡 등 여러 명 음반을 남기며 왕성한 활동을 이어갔다.

“불가능이란 없다”

승승장구하던 리언 플라이셔에게도 좌절이 찾아왔다. 한창 왕성하게 활동할 나이인 37세 때 마비 증상을 동반하는 '근육긴장이상증'이 찾아왔다. 손이 생명인 피아니스트 리언 플라이셔는 이 병으로 오른손이 마비되면서 피아니스트로서의 생명이 끊길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병마의 그늘, 하지만 리언 플라이셔는 주저 않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자신의 음악적 재능과 열정을 믿고 지휘에 도전해, 그 앞에 불가능이란 없음을 증명해 나갔다. 뿐만아니라 피아니스트로서의 감각도 유지하기 위해 왼손을 위한 레퍼토리를 개발, 왼손 연주로 다시 무대에 서기도 했다. 그런 열정에 하늘도 감복한 것일까. 199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는 불가능해 보였던 오른손 치료도 호전을 보이기 시작해 양손 연주도 차츰 가능해지기 시작했다.

‘투 핸즈’, 병마와 싸우는 환자들에 희망이 되다

그렇게 오른손 컨디션을 회복한 리언 플라이셔는 바로 본격적인 피아니스트로서의 활동을 이어갔다. 특히 40년 만에 양손 연주로 녹음한 '투 핸즈'(2004년 발매) 음반은 클래식 음반으로는 드물게 미국에서만 10만장이라는 판매고를 올렸는데, 그는 음반의 수익 일부를 자신이 앓았던 ‘근육긴장이상증’ 의학 연구 재단에 기부하며 같은 병을 앓고 좌절에 빠져있을 환자들을 위로했다. 특히 리언 플라이셔는 근육긴장이상증에 대한 오해로 인해 더욱 악화되는 환자들을 위해 조언을 아끼지 않았고, 예방을 위한 캠페인 활동을 이어가기도 했다. 이러한 리언 플라이셔의 공로를 인정해 2004년 미국신경과학회는 공로상을 수여하기도 했다.

피아니스트, 지휘자, 사회적운동가 등 다방면에서 활약한 리언 플라이셔는 교육자로서도 유명했다. 특히 한국과의 인연도 깊은데, 피바디, 커티스 음악원, 토론토 왕립 음악원 등에서 가르친 그는 국내에도 신수정, 이대욱, 강충모 등 제자들을 여럿 두기도 했으며, 2005년 내한해 예술의전당에서 브람스와 슈베르트 등의 곡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천부적인 재능과 포기를 모르는 열정을 바탕으로 무대에서 또 사회 곳곳에서 노년까지 활발한 활동을 이어온 '왼손의 피아니스트' 리언 플라이셔는 2020년 8월 2일, 향년 92세를 일기로 하늘의 별이 되었다. 그가 일생동안 남긴 아름다운 선율은 미국을 넘어 세계 음악사 속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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