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조재휘 / 디자인 최지민]

▶ 키스 앨런 해링 (Keith Allen Haring)
▶ 출생-사망 / 1958. 05. 04. ~ 1990. 02. 16.
▶ 국적 / 미국
▶ 활동 분야 / 현대미술가, 그라피티 아티스트

뉴욕 지하철에 그린 일회성의 낙서화로 일약 유명 화가가 되었던 ‘키스 해링’. 그는 일련의 공공벽화를 통해 간결하면서도 힘 있는 선과 율동감 있는 상징적 형상들로 낙서와 예술의 경계를 무너뜨렸다.

낙서를 보고 얻은 영감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서 태어난 해링은 어린 시절부터 예술에 흥미를 가졌으며 1976년 피츠버그의 아이비전문예술학교에 입학해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했다. 그러나 이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1978년 뉴욕으로 옮겨 가 시각예술학교에서 다시 공부를 이어나갔다. 이때 해링은 뉴욕 거리의 벽면과 지하철 플랫폼에 그려져 있는 낙서를 보고 깊은 영감을 얻게 된다.

독특한 이미지에 열광

길거리, 지하철, 클럽 등의 벽은 그의 캔버스가 되었고 지나가는 평범한 행인들에게 자신만의 예술 언어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번번이 공공기물 훼손 혐의로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지만 사람들은 해링의 독특한 이미지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그의 간결한 선과 생생한 원색, 재치와 유머가 넘치는 기법들은 뉴욕 지하철의 분필 그림으로서 처음 대중의 관심을 얻게 되었다.

스타 작가로 부상

해링의 재능을 알아본 토니 샤프라치는 1981년 자신의 갤러리에서 해링의 개인전을 기획하였고 해링은 이 전시를 계기로 스타 작가로 부상하게 된다. 낙서화의 형식을 빌려 새로운 회화 양식을 창조해낸 그의 그림은 뉴욕의 새로운 흐름을 주도하게 되었다.

사회적 문제를 예술로 표현

1986년 해링은 전통적 갤러리의 개념에서 벗어나 지역 주민들과 함께 작품을 즐기고 공유할 수 있도록 소호에 팝 가게를 열고 자신의 예술품들을 티셔츠, 장난감, 포스터 등으로 상품화하여 팔기 시작했다. 그는 상위 예술과 하위 예술의 장벽을 무너트리려 노력하였으며, 팝 가게의 개점과 함께 그의 작품들은 더욱더 에이즈(AIDS) 인식, 코카인 전염병 등과 같은 사회-정치적인 주제들을 반영하기 시작했다.

에이즈 경각심 일깨우기 위한 재단 설립

1988년 에이즈 진단을 받은 해링은 에이즈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키스 해링 재단을 설립하고 에이즈단체와 어린이 프로그램을 지원했다. 같은 해 6월에 피사 산 안토니오 교회의 후면 벽에 마지막 작품을 남겼고 생명과 죽음, 인생의 본질적인 주제들을 표현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990년 2월 16일 젊은 나이에 에이즈 합병증으로 눈을 감게 된다.

단순한 표현 같지만 깊은 주제를 담고 있는 ‘키스 해링’의 작품들. 인간에 대한 거침없는 표현들을 통해 끊임없이 대중들에게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낙서와 예술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사회문제를 이야기했던 그의 노력 덕분에 우리가 예술을 조금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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