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심재민 / 디자인 최지민] 다양한 시대극에 등장하는 궁녀. 궁녀는 궁중에서 일하는 여성 관리를 의미한다. 찬란한 역사를 쓰며 근대사회의 뿌리가 된 조선시대 궁녀에 대해 알아보자.

조선 시대, 궁에는 궁녀가 500~600 명쯤 있었다. 궁녀는 왕과 왕족, 내신들의 궁중생활 편의를 위해 시중을 들던 여성을 총칭하는데, 이러한 궁녀들은 궁 이곳저곳에 배치되어 제각각 역할을 수행하며 그 노동의 대가로 나라에서 쌀과 옷감의 월급을 받았다. 어떻게 보면 조선시대 나라에서 월급을 받는 공무원이라고 볼 수 있다.

궁녀에도 지금의 공무원처럼 계급도 존재했다. 보통 정5품 상궁부터 종9품까지 품계를 받은 계층을 궁녀라고 불렀는데, 물론 넓게 보자면 궁궐에서 궁중생활의 편의를 위해 시중을 들던 여성을 포괄적으로 의미한다.

이러한 궁녀들은 임금이 거처하는 ‘지밀’부터 침방, 수방, 세수간, 생과방, 소주방, 세답방에 소속되어 다양한 업무를 맡았다. 바느질, 자수, 요리, 청소, 빨래 등은 물론 역할에 따라 왕비나 후궁, 세자빈 등 왕실의 여성을 모시는 궁녀일 경우에는 육아를 담당하기도 했다.

궁녀가 소속되는 공간에서 무슨 일을 했을까? 대표적으로 침방은 궁에서 필요한 각종 의복을 만드는 곳, 수방은 의복 등에 장식이 되어 줄 수를 놓는 곳, 세수간은 왕-왕비의 세숫물과 목욕물을 대령하는 곳, 생과방은 과자와 음료를 만드는 곳, 소주방은 음식을 만드는 곳, 세답방은 세탁 및 다듬이질 그리고 염색을 하는 곳이었다.

이곳에서 일하는 궁녀들을 관리하는 궁녀를 ‘상궁’이라 했는데, 이들은 정5품의 계급을 지녔고 나름의 막강한 영향력을 갖기도 했다. 그 중 큰방상궁이라 불리는 ‘제조상궁’은 사극에서도 주요 인물로 등장하면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역할로, 후궁과 승은상궁을 제외한 궁녀들의 최고봉에 위치하는 상궁이었다. 이들은 중전 또는 대비와 대면하는 것이 잦을 만큼 영향력이 컸다.

그 외 상궁에는 내전 금고를 관리하는 ‘부제조상궁’, 왕이나 왕비-대비-후궁 등을 옆에서 모시는 ‘지밀상궁’, 왕자와 공주의 육아를 맡는 ‘보모상궁’, 지밀상궁을 모시는 ‘시녀상궁’, 일반 궁녀에서 임금의 승은을 입어 상궁으로 봉해진 ‘승은상궁’ 등이 있다.

다수의 자료에 의하면 보통의 궁녀는 8시간 일하고 다음 날 하루 쉬는 격일 근무제였고, 근무 시간이 긴 지밀나인은  12시간 3교대로 근무했다고 전해진다. 또 월급의 경우 처음 나인이 되면 쌀 4말과 콩 1말 5되, 북어 3마리를 받았고, 정5품 상궁이 되면 쌀 16말 5되, 콩 5되, 북어 80마리를 받았다고 알려졌다. 심지어 명절이나 연말에는 특별 상여가 내려지기도 했다.

그런 만큼 가난한 백성들은 자신의 딸이 궁궐의 궁녀가 되기를 바랐다. 그런데 정작 궁녀를 자발적으로 지원해서 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일이 힘든 것은 물론이고 평생 연애 한 번 하지 못한 채 왕을 위해 살며, 늙거나 병이 들어서야 궁궐 밖으로 나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약 10년에 한 번씩 궁녀를 뽑는데, 지원자가 없어 궁녀들 집안의 친척 아이 또는 기녀의 딸을 궁녀로 데리고 오기도 했고, 관청에 딸린 여자 노비 가운데 궁녀를 뽑기도 했다.

궁녀의 경우 아주 어릴 때부터 궁궐로 데려와 궁중의 교양을 쌓게 훈련했다. 각 처소의 궁녀마다 선발 연령은 달랐는데, 지밀의 경우 4~5세, 침방과 수방은 7~8세, 그밖에는 보통 13~14세의 궁녀가 선발 되었다. 일부 백성의 경우 딸을 궁녀로 보내지 않기 위해 일부러 일찍 결혼을 시키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왕과 왕비 등의 일거수일투족을 수발하며 먹는 음식에서부터 입는 옷, 잠자리까지 여러 가지 일을 곁에서 돌봐 주었던 조선시대 궁녀. 이들의 애환과 함께 조선시대의 찬란한 역사가 쓰여 지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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