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조재휘 / 디자인 최지민]

▶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 출생-사망 / 1571. 09. 29. ~ 1610. 07. 18.
▶ 국적 / 이탈리아
▶ 활동 분야 / 화가

빛을 이용한 극적인 구성과 사실주의 표현 기법으로 르네상스 이후 바로크 미술 탄생에 기여한 ‘카라바조’. 난잡한 사생활에도 불구하고 카라바조는 당대의 가장 혁신적인 미술가로 평가받고 있으며 그의 기법은 후대에까지 모방되고 있다.

기본기를 가지고 로마로 떠나다

11세 때 고아가 된 카라바조는 바로 그해에 당시 밀라노에서 가장 이름을 떨쳤던 화가인 시모네 페테르차노 밑에 도제로 들어갔다. 이곳에서 르네상스적 회화 기법을 모두 습득했을 것으로 여겨지며 이때의 기본기를 가지고 1592년 로마로 떠났다. 당시 로마는 전 세계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로 건축가, 화가, 조각가 등 예술가들이 모두 이곳으로 모이던 시기였다.

화가의 명성을 얻기 시작하다

로마에 도착한 젊은 카라바조는 재능이 있었지만 빈곤하고 비참한 생활을 했기에 독창적인 작품보다 유행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추기경 델 몬테의 후원을 받게 되며 차츰 화가로써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델 몬테의 후원 아래 <성 마태오의 순교>, <성 마태오의 소명>, <성 베드로의 십자가형>, <성 바오로의 개종> 등을 그렸다. 성화는 성스러움보다는 어둡고 사실적이며 고뇌하는 모습이 잘 표현되어 있다.

잦은 사고를 일으키다

사실적이고 도발적인 그의 작품들은 종교화가 아니라는 이유로 거부당하거나 철거되기도 했고 다른 작품들 역시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파문을 일으켰다. 난폭한 성격의 소유자인 카라바조는 비난을 참지 못하고 불법 무기 소지, 경찰 폭행, 경비원 살해 등 가는 곳마다 사고를 일으켰으며 감옥을 드나들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도 <바쿠스>와 <과일 바구니를 든 소년> 작품이 탄생했다.

도망 생활에 지쳐 붓을 놓다

잦은 사건과 사고로 로마를 떠난 카라바조는 나폴리에서 다시 활동을 시작했으며 〈로사리오 기도 중의 성모〉, 〈황홀경에 빠진 막달라 마리아〉, 〈그리스도의 책형〉 등을 그리며 완숙한 기량을 뽐냈다. 벌거벗은 아이가 잠들어 있는 〈잠든 큐피드〉라는 작품은 지나치게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수도사들의 분노를 샀으며 잦은 비난과 도망치는 생활에 지친 카라바조는 붓을 놓게 되었다.

카라바조 얼굴 찾기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은 카라바조의 젊음 모습과 나이가 든 모습이 모두 담겨있고 머리가 잘린 골리앗의 처참한 모습이 카라바조의 자화상이다. 소년 다윗의 얼굴에 젊은 자신을 투영해 젊은 카라바조가 나이가 든 카라바조를 죽인 것으로 해석되며 명암대조법으로 17세기 회화 전체에 큰 영향을 끼쳤다.

당대 가장 혁신적인 미술가로 평가 받고 있는 ‘카라바조’. 그의 그림들은 극적 긴장감을 자아내고 근대 사실화의 길을 개척한 것으로 평가받지만 폭행, 살해 등으로 여러 번 체포되어 감옥을 드나든 그를 도덕과 예술 사이에서 어떻게 봐야 할지는 각자의 판단에 달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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