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박진아 / 디자인 최지민] 유럽 인구의 30~40%를 몰살시키면서 중세 유럽을 초토화시킨 전염병. 그 이름도 유명한 페스트입니다. 페스트의 공포에서 벗어난 인류는 최근 또 다시 감염병을 두려워해야 하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는데요. 중국에서 시작된 코로나19는 약 1,100만 명이 넘게 감염되고, 그 중 52만 명이 넘게 사망했습니다. 우리의 일상을 하루 아침에 바꾸어 놓은 코로나19. 우리는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 나갈 수 있을까요?

코로나19와 같은 재난 상황. 인간은 이기심과 이타심 사이 어떤 행동을 보일까요? 감사하게도 우리는 현재, 이기심보다 이타심에 더 기울이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는 코로나19 발발 후 역대 최고 기부금을 모집했고, 국군간호사관학교를 막 졸업한 생도들은 코로나 환자가 집단 발생한 대구 현장으로 달려갔습니다.

앞서 메르스, 태안 기름 유출 사고에서도 우리는 비슷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왜 우리는 위기 상황이 발생하면 더욱 똘똘 뭉치는 것일까요? 소설 「페스트」와 미국 재난 탐사 보고서 「이 폐허를 응시하라」를 중심으로 그 실마리를 찾아봅니다.

소설 「페스트」의 배경은 1940년대 알제리 오랑입니다. 이 책은 리유와 타루, 두 인물이 페스트와 처절한 투쟁을 벌이는 내용을 중심으로 다양한 인간 군상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 중 주요인물 두 명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의사 리유 - 병든 아내를 멀리 떠나보내고 폐쇄된 도시에서 아픈 사람들을 헌신적으로 돌봅니다.
전직 정치운동가 타루 - 민간 봉사대를 조직하며 페스트에 맞서 싸우지만 끝내 목숨을 잃습니다.

리유 : 신이 그렇게 침묵하고만 있는 하늘을 쳐다볼 것이 아니라 있는 힘을 다해서 죽음과 싸워 주기를 더 바랄지도 모릅니다. (중략) 그러나 그것이 싸움을 멈춰야 할 이유는 못됩니다.

타루 : 물론 이유는 못되겠지요. 그러나 그렇다면 이 페스트가 선생님에게는 어떠한 존재일지 상상이 갑니다.

리유 : 끝없는 패배지요.

(중략)

타루 : 나는 사람을 죽게 만들거나 또는 죽게 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모든 걸 거부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이 유행병이 내게 가르쳐 준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있다면 당신들 편에 서서 그 병과 싸워야 한다는 것뿐입니다. 내가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은 사람은 제각기 자신 속에 페스트를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 소설 「페스트」 중 -

사람들이 감염병에 속수무책으로 죽어가는 상황에서, 리유는 하느님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소극적인 방식보다는 감염병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타루 또한 자원보건대를 조직해서 야전병원에서 헌신적으로 구호활동을 전개합니다.

「이 폐허를 응시하라」는 어떨까요? 레베카 솔닛은 미국 9.11. 테러, 카트리나 재난을 예로 들며, 무능력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언론의 악의적인 보도가 우리의 삶을 얼마나 파괴했는지 경고합니다. 그러면서 재난이 닥쳐올 때 인간이 이기적으로 돌변하고 공황에 빠지거나 야만적인 모습으로 퇴보한다는 관점을 부정하며, 재난은 오히려 우리들 대부분이 연대와 참여와 이타주의와 목적의식을 얼마나 간절히 갈망하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전 세계가 한국의 코로나 위기 대응 능력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정부·지자체 주도의 집중 통제와 성숙한 시민의식이 잘 조화를 이뤘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하지만, 언젠가 코로나 19가 소강상태에 접어들게 되면, 그동안의 교훈을 망각한 채 살아갈 겁니다. 카뮈도 ‘페스트’에서 바로 그 부분을 지적했습니다.

시내에서 올라오는 환희의 외침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리유는 그러한 환희가 항상 위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중략) 페스트균은 결코 죽거나 소멸하지 않으며, (중략) 언젠가는 인간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가져다주기 위해서 또다시 저 쥐들을 흔들어 깨워서 어느 행복한 도시로 그것들을 몰아넣어 거기서 죽게 할 날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소설 「페스트」 중 -

우리 안의 경직성과 보수성도 경계해야 합니다. 끝임 없는 변화와 혁신을 통해 위기 상황에서도 유연함을 잃지 않고 창의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타루 : 그들에게 부족한 것은 바로 상상력입니다. 그들에겐 결코 이 재앙의 규모에 맞설 만한 능력이 없어요. 그래서 그들이 상상해 낸 대책이란 것은 겨우 두통 감기약 수준에 불과한 겁니다.

- 소설 「페스트」 중 -

재난.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닙니다. 연대와 협력의 힘을 상기하며, 우리 모두 다가올 재난을 대비해 지혜를 모아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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