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속 희망을 노래한 ‘베라 린’...코로나19 위로로 이어져 [인포그래픽_세계인물편]
2차 세계대전속 희망을 노래한 ‘베라 린’...코로나19 위로로 이어져 [인포그래픽_세계인물편]
  • 보도본부 | 최지민 pro
  • 승인 2020.07.04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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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뉴스 심재민/디자인 최지민]

▶ 베라 린(Vera Lynn, Vera Margaret Welch)
▶ 출생-사망 / 1917년 3월 20일 ~ 2020년 6월 18일
▶ 국적 / 영국
▶ 활동분야 / 음악
▶ 주요작품 / '위 윌 밋 어겐'(We'll Meet Again), '데어 윌 비 블루버즈 오버'(There'll Be Bluebirds Over), '더 화이트 클리프스 오브 도버'(The White Cliffs of Dover)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군 장병들과 국민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영국의 여성 가수 베라 린. 특히 나치의 폭격에 시달리던 영국 국민들을 위로하며 특별한 아티스트로 기억되고 있다.

무대를 사랑했던 남달랐던 아이
1917년 런던의 이스트엔드에서 배관공의 딸로 태어난 베라 린. 어려서부터 노래 부르는 것을 무척 좋아했던 베라 린은 사람들 앞 무대에 나서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다. 그렇게 일곱 살 때부터 노동자들이 드나들던 클럽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베라 린의 노래에 대한 열정은 무럭무럭 자랐고, 청소년기에 접어들었던 1930년대 어느 날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어리지만 성인 가수 못지않게 가창 하는 모습 그리고 행복에 겨워하는 모습이 당시 암울한 시기를 살아가던 대중들의 마음을 감동시켰고, 입소문을 타며 영국 전역으로 베라 린의 목소리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2차 세계대전 전장 속 희망이 되다
전쟁의 기운이 감돌더니 이윽고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말았다. 전쟁으로 인한 울부짖음은 온 나라를 가득 채웠고 희망마저 갉아 먹고 있었다. 영국도 마찬가지였고 베라 린 또한 전쟁으로 인한 불안감에 휩싸였다. 하지만 베라 린은 노래를 멈추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전쟁의 불행함을 몰아내고 일말의 희망을 되찾기 위해 더 크게 노래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노력은 1941년 '친애하는 당신들에게'(Sincerely Yours)라는 제목의 주간 라디오 방송시작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그녀는 전장 각지에서 싸우던 장병들과 나치의 폭격에 시달리던 영국 국민들을 위로했다. 당시 이 방송은 런던대공습 일년 뒤에 시작해 새벽 2시 30분부터 15분 동안 방송됐다. 영국뿐만 아니라 달콤한 그녀의 목소리는 전 세계 어느 전장에서나 병사들에게 희망이 되어 줬다.

지친 마음에 위로를...‘군의 연인’
위로와 희망을 노래하는 베라 린은 전장에서 스타 중 스타로 떠올랐다. 특히 영국의 전차부대 장병들은 탱크에 '베라'라는 이름을 적은 채 전투에 나설 정도였다. 그런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베라 린은 인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집트, 인도, 미얀마(옛 버마) 등 영국 군대가 주둔한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 순회공연을 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총성이 빗발치는 전장에 큰 위로가 되었고 군인들은 '군의 연인'(The Forces' Sweetheart)이라 부르며 베라 린을 사랑했다. 그렇게 베라 린은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에 '위 윌 밋 어겐'(We'll Meet Again), '데어 윌 비 블루버즈 오버'(There'll Be Bluebirds Over), '더 화이트 클리프스 오브 도버'(The White Cliffs of Dover) 등을 히트시켰다.

목소리만큼 아름다웠던 베라 린의 인성
높은 인기에도 베라 린은 자만하거나 인기에 취해 과시하지 않았다. 또한 자신이 받은 사랑을 베풀 줄 아는 인성까지 갖추며 많은 이들에 귀감이 되었다. 베라린은 평생을 잉글랜드 남쪽 브라이턴 인근에서 남편 해리 루이스와 함께 조용히 살아오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소소한 선행을 이어왔는데, 특히 뇌성마비 아동을 위한 자선 재단을 설립해 아픈 어린이들에게 도와 목소리만큼 아름다운 내면으로 대중에게 또 다른 감동을 선사했다. 이런 베라 린의 진정성에 영국은 물론 전 세계가 응원과 찬사를 보냈다.

코로나19 시름 속 위로가 된 진심
노년의 베라 린은 역시 묵묵히 자신만의 노랫말을 써 내려갔다. 특히 92세이던 2009년 독일에 선전포고를 한 7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위 윌 밋 어게인 베스트 오브’ 앨범을 재발매 하기도 했는데, 이것이 영국 차트 1위에 오르며 다시 한 번 영국을 놀라게 했다. 그런 그녀를 응원하듯 지난해 영국 정부가 성대하게 개최한 전승 75주년 기념식에도 ‘위 윌 밋 어게인’이 울려퍼지며 영국 내에서 감동의 물결을 일으켰다. 그녀의 열정은 늙지 않았다.

지난 3월 20일 103세 생일을 자축하며 전성기 때 자신이 ‘위 일 밋 어게인’을 부르는 모습을 담은 필름을 찾아내 가사를 적고, 자신의 목소리를 얹어 코로나19로 시름에 젖은 일상에서도 “계속 웃고 계속 노래하라”고 강조하며 특유의 위로를 세계에 건냈다. 그렇게 그녀는 마지막까지 희망을 노래하다 지난 18일 향년 103세를 일기로 하늘의 별이 되었다.

“음악이야말로 영혼에 좋은 것이다. 이렇게 어려운 때일수록 기쁜 순간들을 찾아낼 수 있도록 서로를 도와야만 한다” 마지막까지 희망을 노래했던 베라 린. 지난 4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코로나19 사태를 맞은 영국에 대국민 메시지를 발표할 때도 린의 히트곡 '우리는 다시 만날 거예요'(We will meet again)를 인용할 만큼 그녀는 영혼을 위로하는 가수로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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