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홍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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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사람이 한 집단이나 사회를 이루고 살기 시작하면서 생긴 씨름은 우리나라의 전통 민속놀이이자 운동경기입니다. 씨름의 어원은 서로 버티고 힘을 겨루어보라는 말인 영남지방의 ‘씨룬다’에서 발전했고 이것이 명사화되어 오늘날 ‘씨름’이 됐습니다. 그렇다면 순박하면서 흥미로운 우리 민족의 전통 경기, 씨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사진 = 국가기록원, 위키미디어, 픽사베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콘텐츠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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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름은 인간이 지적으로 향상되고 사회 집단이 커지게 되면서 점차 무예로 발달했습니다. 개인적 방어술이었던 씨름이 무술로 발전하게 되는 것은 역사적으로 필연적인 결과라고 볼 수 있는데요. 우리나라에서 과거 씨름은 고구려시대 벽화에도 새겨져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삼국시대부터 무예를 연마하기 위한 목적으로 씨름을 즐겼는데, 신라 화랑도에서도 무술 연마를 하기 위해 씨름을 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사진 = 국가기록원, 위키미디어, 픽사베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콘텐츠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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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조선시대부터 씨름은 대중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김홍도가 조선 후기에 그린 풍속도에서도 씨름이 나라 안에서 널리 행해졌던 것을 알 수 있는데요. <세종실록>에서는 ‘활을 쏘고 역사들에게 씨름을 시켰다.’고 기록돼있습니다. 오래 전부터 씨름은 서서 하는 선씨름, 허리띠를 두 손으로 잡는 띠씨름, 오른팔과 다리에 샅바를 감고 겨루는 바씨름, 오른쪽 넓적다리에 맨 샅바를 상대가 왼손으로 잡는 왼씨름, 왼다리에 맨 샅바를 상대가 오른손으로 잡는 오른씨름 등의 다섯 종류가 있었습니다.

[사진 = 국가기록원, 위키미디어, 픽사베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콘텐츠진흥원]

오늘날 우리나라의 씨름은 북방 유목민족의 전통을 이은 것인데요. 과거 금나라, 원나라, 청나라, 일본에서도 씨름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몽골에서는 공격과 방어의 기본 동작이 약 200여 가지가 됐고, 일본에서는 씨름에서 이긴 노미노스쿠네(野見宿禰)를 신으로 모시며 여러 신사에서 받들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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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오래 전부터 이어져온 씨름이 현대식 경기로 발돋움한 것은 1927년 전후부터입니다.  1927년 서울의 고등보통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던 체육교사들이 씨름의 근대화 작업을 시작했는데요. 그들은 조사를 통해 많은 지역에서 왼씨름이 성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그 후 경기방법을 왼씨름 위주로 통합했습니다. 그렇다면 현대에서 씨름은 어떻게 그 명맥을 이어왔을까요.

[사진 = 국가기록원, 위키미디어, 픽사베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콘텐츠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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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는 씨름을 스포츠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왔는데요. 1927년 9월 조선씨름협회가 결성됐고, 2년 뒤 서울 휘문고등보통학교에서는 제1회 전조선씨름대회를 열었습니다. 조선씨름협회는 1947년부터 대한씨름협회로 개칭해 잠시 중단되었던 전조선씨름대회를 전국씨름선수권대회로 이름을 바꾸어 개최됐으며, 지난해까지 제73회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현재 씨름 선수들은 대부분 지자체 산하의 실업팀에 속해 대회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한때 8개였던 프로 씨름팀은 2016년 마지막 남은 현대삼호중공업 코끼리팀이 해체하면서 모두 없어지게 됐고, 다른 스포츠 종목들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씨름은 자리를 잃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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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민속씨름의 활성화를 위해 사회 곳곳에서는 씨름을 다시 부흥시키기 위한 노력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2008년 씨름의 세계화를 위해 사단법인 세계씨름연맹이 창립됐고, 2000년대 들어서는 대학 씨름 등을 중심으로 대학씨름연맹이 창설됐습니다. 전통성을 인정받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씨름은 앞으로 세계화를 도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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