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심재민/디자인 최지민]

▶ 모리 칸테(Mory Kante)
▶ 출생-사망 / 1950년 3월 29일 ~ 2020년 5월 22일
▶ 국적 / 기니(프랑스령)
▶ 활동분야 / 음악
▶ 주요작품 / 예케예케(1987년 발매) 외 일렉트로닉 그리오 음악 다수

아프리카 음악가 중 처음으로 '밀리언셀러'에 오른 기니의 모리 칸테. 자신의 좋은 영향력을 동원해 아동 및 난민을 위한 인권 문제에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음악과의 필연적 운명
1950년 프랑스령 기니에서 태어난 모리 칸테. 그는 서아프리카 지역에서 유명한 예술가를 배출한 ‘그리오(Griot)’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리오는 음악 등으로 역사와 각종 이야기를 구전하는 역할을 하는 '음유시인'을 말하는데, 칸테의 어머니와 아버지 모두 가수였다. 자연스럽게 태어나면서부터 음악을 접하게 된 모리 칸테는 7살이라는 어린 나이부터 본격적으로 음악을 시작했다. 그렇게 아프리카 전통 음악을 배운 칸테는 성장하면서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구축하게 된다.

아프리카 전통음악에 더한 모리 칸테만의 색
아프리카 전통음악에 토대를 둔 모리 칸테는 종교와 최신 음악 장르를 버무리기 시작했다. 특히 이슬람 음악의 여러 측면의 자신의 음악 세계에 접목했고, 한편으로는 일렉트로닉 음악을 도입해 새로운 장르를 개척해 나갔다. 특히 아프리카 전통 현악기인 '하프 코라'를 일렉트로닉 음악에 접목해 사용한 '일렉트로닉 그리오'라는 장르를 선보이며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는 자신이 태어나서부터 접한 그리오 음악의 미래를 견인한 대목으로 후세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예케예케’ 발매로 세계적 가수 반열에 오르다
성인이 되어 본격적으로 대중성 있는 음악을 시작한 모리 칸테는 1971년 한 밴드의 멤버로 활동하며 이름을 알렸고 1973년 자신의 이름으로 솔로 활동을 시작하면서 영향력을 키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프리카는 물론 주변 지역에까지 이름을 알린 모리 칸테는 1987년 발매한 음반 '예케예케'가 유럽에서도 큰 인기를 끌며 세계적인 가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특히 예케예케 앨범은 프랑스와 독일 등의 음악차트 1위를 휩쓸었고 아프리카 뮤지션 앨범 가운데 처음으로 1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대중의 인기를 선한 영향력으로 보답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음악가로 성장한 모리 칸테는 자신의 영향력을 선한 곳에 이용하기 시작했다. 바로 아프리카에 시급한 인권문제에 목소리를 낸 것. 칸테는 아프리카음악을 세계에 알린 '아프리칸 웨이브' 창립멤버로 활동하며 유엔아동기금(UNICEF·유니세프)과 유엔난민기구(UNHCR) 등 여러 국제기구 친선대사를 맡아 인권문제에 있어 선한 영향력을 떨쳐 왔다. 특히 아프리카를 위기로 내 몬 에볼라 확산 당시 이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Africa Stop Ebola’ 음원 작업에 참여해 눈길을 모았고, 2014년 발표된 이 노래의 수익금은 의료 자선 단체에 기부되어 환우들에 큰 도움이 되었다.

아프리카 음악가 중 처음으로 '밀리언셀러'에 오른 기니의 모리 칸테. 그는 왕성한 음악 활동을 이어나가며 세계적 인지도를 바탕으로 선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러던 모리 칸테는 2020년 5월 22일, 오랜 지병으로 인한 고통 끝에 향년 70세를 일기로 하늘의 별이 되었다. 그의 죽음에 전 세계에 애도의 물결이 일었고, 특히 코로나19 탓에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다 별세한 것으로 알려지며 안타까움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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