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조재휘 / 디자인 최지민]

▶ 바츨라프 포미치 니진스키(Ва́цлав Фоми́ч Нижи́нский)
▶ 출생-사망 / 1890. 03. 12. ~ 1950. 04. 08.
▶ 국적 / 러시아
▶ 활동 분야 / 발레 무용수, 안무가

역사상 가장 재능 있는 발레리노로 손꼽히며 그가 맡은 역할에 있어서 탁월한 재능을 보여준 ‘니진스키’. 당시 발레리노 중에서 보기 힘든 기술인 앵포엥트(en pointe)를 출 수 있었고 중력을 거부한 듯 높이 도약하며 춤추는 것도 전설로 남아있다.

니진스키의 어린 시절
니진스키는 무용수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니진스키가 춤에 대단한 소질을 가진 것을 직감한 그의 아버지는 곧바로 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1900년 니진스키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황실무용학교에 입학했고 당대 최고 교사들이 모여 있던 이 학교에서 교사들은 그의 비범한 재능을 알아보았다. 결국 니진스키는 18살 때 마린스키 극장의 공연에서 주역을 맡았다.

인생의 전환점 맞이
니진스키는 발레 후원가 세르게이 댜길레프를 만나면서 인생의 큰 전환을 겪게 된다. 댜길레프는 니진스키의 재능을 간파해 그를 수석 무용수로 한 발레 뤼스를 창립했고 그 시대 가장 유명한 발레단 중 하나가 되었다. 이로써 러시아 발레는 서유럽에 활발히 소개될 수 있었고 니진스키는 그 중심에서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게 된다.

안무 창작 작품 ‘목신의 오후’
1912년 니진스키는 말라메르의 시를 바탕으로 드뷔시의 음악을 사용한 <목신의 오후>에서 처음으로 안무를 창작했다. 이 작품은 주인공 목신이 어느 여름 오후 플루트를 불다가 아름다운 처녀와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으로 니진스키는 신체에 집중해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의 안무를 만들어냈다. 당시 일반적인 남성 발레복이었던 반바지가 아닌 현대 발레복의 형태인 타이츠를 입고 성기에 포도송이 장식을 한 채 공연을 펼쳤다.

첫 안무의 외설 논란
특히 스카프를 이용한 마지막 춤사위는 노골적으로 자위행위를 묘사하며 큰 화제를 일으켰다. 파리 귀부인과 상류층은 충격에 휩싸인 채 그를 외설죄로 비난했고 예술가들은 음악의 결을 잘 살린 안무라며 옹호했다. 이 외에도 니진스키가 안무를 담당한 <봄의 제전> 역시 과격한 거부 반응만큼이나 발레 미학에 혁신을 가져온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댜길레프와 결별, 그리고 결혼
봄의 제전으로 시끌벅적했던 시기에 발레 뤼스는 남미를 순회 공연했는데 댜길레프는 항해 공포증으로 항해에 동반하지 않았다. 댜길레프가 옆에 없어지자 니진스키는 헝가리 풀츠스키 백작의 영양인 로몰라 드 풀츠키와 가까운 사이가 되었고 결혼했다. 결혼 소식에 격노한 댜길레프는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니진스키가 무대에 서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정신 질환 그리고 죽음
댜길레프를 배신한 죄책감과 애증, 전쟁으로 인한 불안, 성향이 다른 아내와의 소통 부재에서 오는 공허함도 신경 쇠약을 가중시켜 니진스키는 1917년 공연을 끝으로 무용계에서 완전히 은퇴했다. 그는 나머지 생애를 정신병원과 보호시설의 출입을 반복하다 런던의 한 사설 정신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예술혼을 불살랐던 ‘니진스키’는 10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기간 동안 현대 무용사의 판도를 바꿔놓았다. 현재 니진스키의 춤은 영상으로 남아 있지 않고 몇 장의 사진으로만 전해지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도 그의 매혹적인 몸짓과 특유의 눈빛을 느끼기에 충분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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