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박진아] 과거에 비해 근로자들의 노동환경은 점차 좋아지고 있다. 물론 아직도 나아가야 할 문제들은 많지만 근로환경의 보호와 발전을 위한 노력은 꾸준히 늘어가고 있다. 그리고 이번 사례로 산재보험법의 개정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임신 중 근로환경으로 인해 태아에 질병이 생겼을 경우, 이를 산재로 인정하는 첫 사례가 나와 이목이 집중된다.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29일 같은 병원에서 근무한 간호사들이 잇따라 선천성 심장 질환 아기를 출산한 것과 관련해 대법원이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고 산재보험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아이의 선천성 질환이 엄마의 근로환경과 연관이 있다면 이를 업무상 재해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다. 심장 질환 아기들이 태어난 지 10년 만에 나온 사법부의 최종 판단이기도 하다.

이 판결은 제주의료원에서 근무했던 간호사 A씨 등 4명이 "요양급여 신청을 반려한 처분을 취소하라"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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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은 "임신 중인 여성 근로자와 그 태아는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업무상 유해 요소로부터 충분한 보호를 받아야 하고, 국가 역시 이러한 위해 요소로부터 여성 근로자에 대한 충분한 보호가 이뤄지도록 할 책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제주의료원의 간호사들이 겪은 질환은 대부분 비슷하다. 4명의 간호사가 2009년 임신해 유산 징후 등을 겪은 뒤 이듬해 아이를 출산했는데, 아이 4명이 모두 선천성 심장질환을 갖고 태어난 것.

당시 이들을 포함해 제주의료원에 근무하던 임산부 간호사 15명 중 4명은 선천성 심장질환 아기를 낳고, 5명은 유산을 했다. 건강한 아기를 출산한 간호사는 6명에 불과했다. 이에 이들은 임신 초기 유해한 요소에 노출돼 태아의 심장에 질병이 생겼다며 요양급여를 청구했지만 거부되자 소송을 냈다.

당시 제주의료원은 노동 강도가 높을 뿐 아니라 불규칙한 교대 근무, 부족한 인력 등으로 이직률이 높았던 것으로 조사됐으며 특히 이 병원은 고령자가 많아 알약을 삼키지 못할 경우 간호사들이 가루로 분쇄하는 작업을 했는데, 임산부와 가임기 여성에 금지된 약들도 분쇄 대상에 다수 포함됐던 것으로 파악됐다.

재판부는 이 같은 근로 환경이 태아들의 선천성 질환과 인과관계가 있는지,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적용 범위에 태아가 포함되는지 등이 쟁점이 됐다.

그리고 대법원은 "임신한 여성 근로자에게 그 업무를 이유로 발생한 '태아의 건강손상'은 여성 근로자의 노동능력에 미치는 영향(질병)과 관계없이 산재보험법 제5조 제1호에서 정한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에 포함된다"고 판시했다.

이 같은 대법원의 판결은 여성 노동자의 모성 보호 범위를 크게 넓힌 전향적 판결이란 평가가 나온다. 업무상의 사유에 따른 근로자의 부상, 질병, 장해 또는 사망을 의미하는 산업재해. 모성의 보호 범위를 넓혀 적용한 이번 판시가 앞으로 여성들의 노동환경에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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