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적인 배우 ‘비비안 리’, “나는 스타가 아니라 나는 여배우이다” [인포그래픽_세계인물편]
전설적인 배우 ‘비비안 리’, “나는 스타가 아니라 나는 여배우이다” [인포그래픽_세계인물편]
  • 보도본부 | 최지민 pro
  • 승인 2020.04.18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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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뉴스 조재휘 / 디자인 최지민]
 
▶ 비비안 메리 하틀리(Vivian Mary Hartley)
▶ 출생-사망 / 1913. 11. 05. ~ 1967. 07. 08.
▶ 국적 / 영국
▶ 활동 분야 / 배우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2회나 수상할 만큼 미모와 연기력을 동시에 소유한 전설적인 배우 ‘비비안 리’. 출중한 연기력을 보여주며 할리우드의 톱스타가 되었고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애수> 등으로 전 세계 영화 팬들을 사로잡았다.

 
본격적인 연기 생활
비비안 리는 1913년 11월 5일 영국령 인도의 벵갈 다르질링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비비안 메리 하틀리다.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연극에 출연했던 비비안 리는 1920년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윌딩햄스쿨에서 공부했고 여기서 선배 모린 오 설리번을 만나 배우를 꿈꾸게 된다. 그러다 런던 왕립극예술아카데미에서 본격적으로 연기를 배우기 시작한다.

존재감을 드러내다
이즈음 13살 연상의 귀족인 허버트 리 홀만과 첫 번째 결혼을 하게 되는데, 보수적이었던 남편은 그녀의 배우 활동을 좋아하지 않았기에 그녀는 다니던 학교도 그만둬야 했다. 첫 번째 아이를 출산하고 가정주부 생활로 우울증에 시달리던 비비안 리는 친구들의 독려로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하게 되고 연극 <미덕의 가면>에 출연해 호평을 받으면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여주인공
1930년대 후반 비비안 리는 유명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읽으며 여주인공 스칼렛 오하라에 매료되었고 이 작품을 영화화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던 제작자를 설득해 배역을 따냈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당시까지 최고 흥행작이 되었고, 1940년에 아카데미상도 무려 10개나 받았다. 또한 비비안 리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까지 받게 되었다.

결혼 이후 연극 무대를 누비다
그녀의 데뷔 무대를 본 명배우이자 감독인 로렌스 올리비에가 비비안 리에게 다가가고 둘은 곧 불륜 상대가 된다. 당시 두 사람은 모두 기혼자였고 영화 <무적함대>에 연인으로 출연하면서 실제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 1940년 로렌스 올리비에의 아내와 비비안 리의 남편이 각각 이혼에 동의하면서 둘은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 후부터는 영화보다는 남편이 연출하거나 출연하는 연극에 함께 출연하며 둘은 20여년 동안 연극무대를 누볐다. 연극 <12야>, <맥베스>, <타이투스 앤드로니커스>를 함께 공연했다.

세계적인 여배우임을 입증
비비안 리는 1951년 말론 브랜도와 영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 출연하면서 세계를 대표하는 여배우라는 것을 다시 입증했다. 영화에서의 열연으로 비비안 리는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두 번째로 수상했으며 저명한 평론가 폴린 카엘은 연민과 공포를 자아낼 만큼의 보기 드문 연기력을 펼쳤다며 극찬했다.
 
오랜 투병 끝에 생을 마감하다
비비안 리의 영화 활동은 1965년 <바보들의 배>에 출연한 것이 마지막이었고 1940년대 중반 처음 발견된 만성 결핵으로 발작이 반복되자 건강은 더욱 나빠졌다. 결국 1967년 7월 8일 비비안 리는 오랜 투병 끝에 폐결핵으로 사망했다.
 
스타가 되는 것에 전혀 관심이 없었고 오로지 배우로서만 인정받기를 원했던 ‘비비안 리’. 그녀의 출중한 미모가 배우로서의 정당한 평가에 걸림돌이 되었지만 불꽃처럼 연기력을 불태운 열정만큼은 진정한 배우로 인정받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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