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박진아 / 디자인 최지민] 1859년 6월. 30세 스위스 사업가는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3세에게 사업 청탁을 하기 위해 이탈리아 북부로 향한다. 황제는 오스트리아와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당시 이탈리아 반도는 여러 개로 나뉘어 있었다. 사르데냐는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하고 싶었다. 하지만, 오스트리아가 워낙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어, 사르데냐의 힘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사르데냐는 오스트리아와 경쟁관계인 프랑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프랑스는 사보이와 니스를 넘겨받는 조건으로 참전하게 된다.

1859년 6월 25일. 솔페리노에서 약 7km 떨어진 카스틸리오네에 도착한 이 청년은 큰 충격에 빠진다. 전쟁이 끝난 현장의 모습은 ‘참혹함’ 그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사업은 뒷전이고 전상자들을 구호하고 돌보는데 전력을 기울였다. 마침내, 전쟁 3년 뒤인 1862년, 자비로 <솔페리노의 회상>을 출간한다. 이 책은 당시 유럽사회 지식인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킨다.

바로 적십자의 아버지 ‘장 앙리 뒤낭(Jean Henry Dunant)’의 이야기다.

<솔페리노의 회상>은 내용상 3부로 나눌수 있다. 1부는 전투 양상과 전쟁의 참사, 2부는 구호활동, 3부는 세상을 향해 2가지 혁신적인 제안을 하는 내용이다.

1부. 전쟁의 참혹성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앙리 뒤낭은 당시 참전했던 군인들을

그대로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앙리 뒤낭은 당시 참전했던 군인들을 인터뷰 하고 실제로 본 모습 등을 정리했다.

2부. 앙리 뒤낭이 이동한 경로를 따라 구호활동을 전개하는 내용을 기술했다.

* 1차 카스틸리오네
- 부상병 1차 집결지
- 부상병과 환자를 직접 돌봐줌

* 2차 브레시아
- 부상병 2차 집결지
- 주로 관찰을 함
- 외과 수술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체계적인 수술이 행해지고 지원을 위한 민간위원회가 만들어 짐

* 3차 밀라노
- 부상병 3차 집결지
- 주로 관찰을 함
- 많은 귀족들이 자발적으로 집을 개방하고 침상을 지원하며 구호활동에 적극 동참함.

3부. 앙리 뒤낭의 제안
- 자원봉사자로 구성된 구호단체를 설립할 것
- 구호요원을 보호할 수 있는 국제조약을 체결할 것

근대 인도주의를 탄생시킨 <솔페리노의 회상>. 한 청년이 세상을 향해 던진 2가지 제안으로 인류는 수 많은 소중한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자료제공 - 대한적십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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