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조재휘 / 디자인 최지민] 지난 10일 치매로 투병 중인 60대 남성 A씨가 손자들 앞에서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선처를 받아 징역살이를 면할 수 있었다. 1심에서는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2심에서 ‘치료적 사법’을 적용받아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것. 이는 국내에서 ‘치료적 사법’이 적용된 법원의 첫 판결이다.

‘치료적 사법’은 처벌보다는 문제 해결에 주목적이 있으며 전통적인 사법체계의 틀 안에서 보완적으로 도입된 새로운 사법 결정 방식이다. 이를 위해 판사는 물론 검사, 변호사, 피해자의 동의와 협조는 필수적이며, 피고인의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치료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치료 여부를 감시하면서 피고인을 치료하고 재사회화하고자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A씨는 본래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2심에서는 1심을 깨고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면서 집행유예 기간에 보호관찰을 받도록 하고 주거를 치매 전문병원으로 제한했다. 치매가 있는 A씨를 단순히 감시하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치료를 받도록 배려한 조처다.

치매 남성이 만약 치료 없이 징역형을 살게 된다면 어떨까. 아마 그의 치매 성향은 더 강해질 것이며 교정의 목표인 재사회화는 불가능해진다. 이런 이유 등으로 재판 역시 남성의 건강 상태를 고려해 법정이 아닌 남성이 입원 중인 병원에서 열렸다.

이는 피고인이 계속 치료를 받도록 하는 것이 모든 국민이 인간의 존엄성을 가진다고 선언한 헌법과 조화를 이루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재판부는 설명했다. 이어 이번 판결로 사법절차가 끝난 것이 아니라 치료를 위한 사법 절차는 계속된다는 점을 명심해달라고 당부했다.

‘치료적 사법’ 제도는 1987년 데이비드 웩슬러 미 애리조나대 교수에 의해 처음 등장해 제도화되었으며 이후 캐나다, 호주, 독일, 뉴질랜드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플로리다주 약물법원 등 문제해결 전문법원만 1,000여개가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이제 걸음마를 시작한 수준이며 대법원이 올해 처음 기본연구과제로 채택해 연구 중이다. 서울고법 형사1부는 지난해 6월, 존속살해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20대 여성의 항소심 사건에서 법심리학 전문가를 전문심리위원으로 지정해 따로 의견을 들어 판결에 참고하는 등 재판부의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범죄를 일종의 질병으로 보고 사법 기능의 중점을 근본적인 원인 치료에 두고 있기에 범죄자에게 법에 따른 일정한 고통만을 부과하는 사법 시스템이 점차 인간의 존엄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 제도를 실형을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지 않게 주의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는 상황이다.

처벌 위주에서 벗어나 범죄자가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돕는 ‘치료적 사법’ 제도. 아직 우리나라는 시작 단계이지만 이제부터 법조계와 의료계 모두가 함께 발을 맞추어 모든 국민의 존엄성이 존중되는 지속적인 관리가 될 수 있는 제도가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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