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조재휘] 지난해 12월 예능프로그램 <투유 프로젝트-슈가맨3>에 출연해 그야말로 신드롬을 일으키며 데뷔 30년 만에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가수가 있다. 바로 가수 ‘양준일’이다. 시대를 앞서간 천재라고 평가받으며 온라인 탑골 공원 인기의 중심이었던 90년대의 GD ‘양준일’의 매력은 과연 무엇일까?

[사진/'슈가맨3' 방송화면 캡처]
[사진/'슈가맨3' 방송화면 캡처]

이미 양준일은 수십 년 전 음악방송을 스트리밍해주는 온라인 탑골 공원을 통해 먼저 발굴돼 젊은 층에서도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세련되고 자유분방한 무대 매너, 빅뱅의 GD와 흡사한 외모에 지금 봐도 어색하지 않을 힙한 패션 등이 젊은 세대의 마음을 끌었다.

재미교포 출신의 양준일은 미국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비즈니스를 전공하던 중 연예기획사 사장인 이범희를 만나고 가수 데뷔 제의를 받았다. 그는 20살에 한국으로 돌아와 앨범 준비 작업 후 1990년 11월 <리베카>를 타이틀곡으로 한 1집 앨범으로 데뷔했다. 

[사진/KBS 제공]
[사진/KBS 제공]

당시 작사, 작곡, 무대 퍼포먼스, 편곡 등 다양한 재능을 갖춘 남성 음악가로서 호평을 받았다. 다른 활동 곡들인 <가나다라마바사>, <Dance with Me 아가씨>는 그가 직접 작사, 작곡한 곡들로 개성 강한 음악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친다. 

하지만 재미교포 출신의 그는 자유분방하고 거침없는 무대 매너 등이 91년 당시 한국 사회의 정서와 맞지 않아 싸늘한 시선을 받기도 했으며 그의 음악에 대해 호불호가 갈리기도 했다. 그의 패션은 지금 보기에도 촌스럽지 않게 잘 입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 당시에는 단정하지 않게 보였고 생소한 장르인 그의 음악은 대중적으로는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

[사진/위엔터테인먼트 제공]
[사진/위엔터테인먼트 제공]

1993년까지 2장의 앨범을 내고 활발히 활동했지만 당시 비자 문제와 한국의 정서와 맞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로 사실상 퇴출당했다. 당시 10년짜리 비자로 들어왔기 때문에 6개월마다 출입국관리소를 통해 스탬프를 받아야지만 한국에서 활동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최근 방송에 출연한 양준일은 당시를 회상하며 비자 출입국 관리 공무원이 자신의 어눌한 말투와 개성 강한 옷차림을 보고 국내 체류 권한 갱신을 허용하지 않아 연예계 활동을 이어나가지 못한 채 쫓겨나듯이 미국으로 돌아가야 했다고 밝혔다.

[사진/JTBC 제공]
[사진/JTBC 제공]

한국을 떠난 이후에도 미국에서 여러 뮤지션들과 함께 음악 활동을 이어가고자 자택에서 합숙하기도 했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수년의 준비 끝에 2001년 한국 가요계에 다시 복귀한다. 앨범 <Fantasy>를 발표하고 V2라는 프로젝트 그룹의 쟈이로 활동을 재개했다. 

이전 양준일의 이미지로는 어느 소속사도 음반을 내주려 하지 않았고 양준일은 어쩔 수 없이 기존의 이미지를 탈피하고자 이름도 바꾸고 쌍꺼풀 수술을 하는 등 모든 걸 바꾸고 다시 대중들과 만나게 된다. 하지만 이마저도 계약 관련 마찰 등 여러 문제로 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가 없게 되어 자연스럽게 가수 생활을 접게 되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사진/연합뉴스 제공]

은퇴 이후 영어 강사를 하기도 했으며 2015년에 미국으로 넘어가 <투유 프로젝트-슈가맨3>에 출연하기 전까지 식당에서 서빙 일을 했다. 그러다 단 한 번의 방송 출연으로 데뷔 30년 만의 첫 팬 미팅을 열기도 했으며 티켓 예매가 시작되자마자 2회 전석이 매진됐다.

각종 업계에서 러브콜이 쏟아지며 이제 그는 본격적인 활동의 시작을 알렸다. 정형화된 안무가 아닌 누군가가 따라 할 수 없는 자신만의 느낌 있는 그루브 선보이는 가수 ‘양준일’. 이제는 어려웠던 지난 시절은 잊어버리고 순수한 영혼으로 대중들에게 아름다운 음악을 선보이며 꽃길만 걷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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