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조재휘 / 디자인 최지민] 지난 18일 국가적 대사가 있을 때마다 땀을 흘리는 비석으로 유명한 경남 밀양 ‘표충비’에서 또다시 땀이 흐른 것으로 확인되었다. 밀양시는 이날 오전 4시쯤 무안면 홍제사에 있는 표충비 표면에 땀이 나듯 물방울이 맺혀 흘렀다고 전했다. 오전 9시까지 약 5시간 동안 약 1L가량의 물이 흘러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표충비’는 사명대사의 충절을 기리는 밀양시 무안면 홍제사 경내에 있는 비각으로 일명 사명대사비라 부른다. 임진왜란 당시 의승병을 이끌어 왜군을 크게 무찌르고 일본에 전쟁포로로 끌려간 조선인 3,000명을 환국시킨 사명대사의 높은 뜻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표충비는 1742년 10월 사명대사의 5대손인 남붕선사가 경상북도 경산에서 돌을 가져다가 현재의 자리(밀양시 무안면 무안리)에 세운 것이다. 좌대를 포함한 총 높이는 380cm, 비신의 높이 275cm, 너비 98cm, 두께 56cm의 큰 비석으로 현재 비각 안에 보존되어 있다.

비석의 정면에는 ‘유명 조선국 밀양 표충사 송운대사 영당비명병서’를 새기고, 뒷면과 옆면에는 ‘서산대사 비명’과 ‘표충사 사적기’를 음각했다.

비문에는 표충사의 내력, 서산대사의 행적, 사명대사의 행적 등을 4면에 고루 새겨 놓았다. 그리고 서산대사의 제자이기도 한 사명대사가 임진왜란 당시 스승의 뒤를 이어 승병 활동을 한 사실, 가토 기요마사와의 담판 내용, 선조 임금의 어명을 받들어 일본에 건너가 포로로 끌려갔던 백성들을 데리고 온 사실 등을 적고 있다. 표충비는 비석 3면에 사명대사, 서산대사, 기허대사의 행적을 기록하여 일명 삼비(三碑)라고도 불린다.

표충비가 유명해진 이유는 나라에 큰일이 있을 때마다 땀을 흘리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민간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사명대사의 우국충정이 지금까지 전해지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기록에 따르면 1894년 동학 농민 운동을 시작으로 1919년 3·1 독립 만세운동, 1945년 8·15 해방, 1950년 6·25 전쟁, 1985년 남북고향 방문 등에 땀을 흘렸다. 최근에는 2008년 FTA 소고기 협상, 2009년 김수환 추기경 선종, 2010년 천안함 침몰, 2017년 대통령 탄핵 심판 당시에도 땀을 흘렸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아직 땀을 흘리는 원인을 정확하게 밝혀내지 못하고 있지만 과학계는 비석 표면에 물방울이 땀처럼 맺히는 것이 결로 현상일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비석에 생긴 땀은 수분을 많이 머금은 공기가 찬 비석 표면에 닿아 마치 땀을 흘리는 것처럼 물방울이 맺혔을 개연성이 있다는 것이다.

밀양시 관계자는 표충비가 땀을 흘리는 현상은 좋을 때나 나쁠 때 모두 있었기 때문에 해석하기 나름인 것 같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아직까지 과학적으로도 설명되지 않는 부분도 있는 가운데 표충비의 신비감을 계속 가져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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