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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뉴스 이호] 이번시간은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으로부터 우리의 얼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민족사학자들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일본은 일제 강점기 시절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민족의 얼을 없애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각 자원을 수탈하고 전쟁터에 우리 조상들을 징용하는 등 물질적인 것뿐만이 아니라, 일본의 한국 식민지화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부정적 요소를 강조한 식민사관을 강조하고 세뇌하려고 했다.

이에 민족사학자들이 강력히 반발하며 민족사관을 내세웠는데, 일제가 주장하는 임나일본부설(신공황후의 한반도 정벌을 전후해서 한반도를 임나일본부가 지배했다는 주장)등을 해결하기 위해 민족사학 초기에 실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우리나라의 역사를 독립된 역사로 파악하려는 시도가 이루어 졌다.

그렇다면 우리 민족의 얼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민족사학자들에는 어떤 분들이 있을까?

 

일단 1910년 국권 피탈을 전후해 민족주의 사학자들이 활동을 전개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 중 한 명은 백암 박은식 선생(1859~1925)이다.

백암 박은식 선생은 국권 피탈 전, 계몽사상을 중시 여겨 영웅의 출현을 기다렸지만 국권 강탈 후에는 국혼(國魂) 회복을 위한 역사의식을 갖는 것이 독립의 기본이라 말했다. 박은식 선생은 나라는 형(形)이고 역사는 신(神)이라고 주장했는데, 나라라는 형체는 멸망할 수 있지만 그 나라의 혼이라고 할 수 있는 역사는 결코 없어지지 않기 때문에 정신을 살리면 언젠가 형체도 부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은식 선생의 주요 활동으로는 황성신문에서 주필활동을 했고 대동고사론, 동명왕실기, 연개소문전, 동제사, 안중근의사전, 한국통사등의 집필을 했다. 또한 임시정부의 국무총리 겸 제2대 대통령이기도 했다.

그 다음은 단재 신채호 선생(1880~1936)이다. 신채호 선생은 한국사의 발전 과정을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라고 바라보았다. 아(我)는 우리나라, 비아(非我)는 우리나라를 침략하는 제국주의를 의미한다. 주요 활동으로는 대한매일신보에 독사신론을 연재하고 의열단의 조선혁명선언문을 작성한 바 있으며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운동에 적극적인 참여를 했다.

그 외에도 민족주의 사관의 학자로는 위당 정인보(1839~1950)가 조선사 연구를 저술하여 한국사가 단군으로부터 부여, 고구려로 전승되는 것으로 파악하였고 민족의 근본은 ‘얼’이라는 주장을 했다.

또한 호암 문일평 선생(1888~1936)은 ‘조선심’을, 민세 안재홍 선생(1891~1965), 남창 손진태 선생(1900~1960), 육당 최남선 선생(1890~1957)이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민족의 기개를 잃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 했다.

일제가 조선의 국권을 강탈하면서 단지 주권뿐만 아니라 민족성을 없애기 위한 노력에 많은 힘을 쏟은 이유는 박은식 선생의 말씀과 같이 국가의 혼이라는 것이 한 번 사라지게 되면 물질적인 것과는 다르게 되찾아 올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일제는 후한을 없애는 것은 물론 독립에 대한 생각 자체를 없애기 위해서라도 일본말만 쓰게 하고 창씨개명을 강제하는 등 조선인들의 황국 신민화에 많은 노력을 쏟았다.

가장 어려운 시기의 행동이 진정으로 마음 깊은 곳에서 나온 것이라 했다. 국가적으로 가장 괴롭고 암울했던 시기에 민족혼의 끈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한줄기 빛이 되려 했던 민족 사학 학자들의 숭고한 뜻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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