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경북 영덕군)] 빠르게 돌아가는 사회 속에서 정신없이 치이다 보면 몸과 마음은 피폐해지기 십상이다. 특히 도시의 틀에 맞춰 살아가다 보면 어느 덧 마음속에 욕심, 시기, 질투, 미움 등이 자리 잡아, 그런 내 모습에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이럴 때 가방하나 둘러매고 떠나는 소박한 여행은 스스로를 돌아보고 치유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준다. 이러한 치유 여행지로 영덕의 소박한 사찰 ‘유금사’를 추천한다.

ⓒ지식교양 전문채널-시선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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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금사는 경상북도 영덕군 병곡면 칠보산(해발 810m)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승려 자장율사가 673년(573년이라는 주장도 있다) 창건한 사찰이다. ‘금을 손으로 주울 정도로 많이 캤다’고 전해지는 ‘유금’ 마을에 지어져 ‘유금사’라 명명되었으며, 아담한 규모라 사찰이라기보다 ‘절집’이라 표현하는 여행객들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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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소담한 모습을 하고 있는 ‘유금사’는 조선시대까지는 사세가 번성했다고 알려져 있다. 긴 세월동안 폭우와 화재 등의 이유로 인해 폐허 또는 소실되었다가 1627년에 중창되어 현재의 소박한 모습으로 변모하였다. 그래서인지 숱한 풍파를 인내해 온 유금사의 한눈에 들어오는 경치를 바라보면 왠지 모를 숙연함과 동시에 동질감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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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금사에는 몇 가지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은 신라말기 장화부인과 관련한 설화이다. 신라말기 당시 장화부인은 마의태자를 몹시 사랑했다. 하지만 신분의 차이로 인해 이룰 수 없는 사랑이었기에 장화부인은 속세를 떠나 유금사를 찾아 출가 하였다. 그리곤 유금사에서 마의태자가 무사히 왕위에 오를 수 있도록 빌고 또 빌었다. 하자만 어느 날 신라의 패망 소식과 함께 마의태자 역시 유랑 신세를 전전하다 비명횡사 했다는 비보가 들려왔다. 이에 장화부인은 애를 태우며 마의태자의 극락왕생을 빌다 끝내 목숨을 잃고 말았다. 당시 이를 안타깝게 여기던 신도들이 장화부인의 장례를 지내주고 묘도 써주었는데, 현재까지도 장화부인의 묘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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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보산 품에 안긴 소박한 풍경의 유금사. 이곳에는 대웅전·서운루·향로전·산왕각 등이 있다. 그리고 뒤뜰에는 보물 제674호로 지정된 삼층석탑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 역시 화려함보다는 전형적인 3층 석탑의 작고 조촐한 모습이어서 위용보다는 어떤 편안함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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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 유금사는 주변의 군자산, 장성봉, 선유구곡, 백암온천, 고래불해수욕장, 화양계곡, 칠보산 자연휴양림, 신돌석장군 생가터 등 관광지와 멀지 않아 함께 둘러보면 몸과 마음에 치유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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