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조재휘] 홍콩과 마카오의 기업가인 ‘스탠리 호’. 마카오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자 아시아에서도 부유한 사람 중 하나이다. 그는 홍콩과 마카오에 많은 재산을 소유하고 있으며 엔터테인먼트, 관광, 해운, 부동산, 항공 교통을 포함하는 다양한 사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많은 회사의 수많은 요직을 차지했던 ‘스탠리 호’는 과연 누구일까?

[사진/F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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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오에서 시작된 또 다른 삶
스탠리 호는 1921년 홍콩에서 태어났다. 홍콩 유력 명문 호퉁 가의 자손이었지만 유복한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열세 살 때 아버지가 주식 투자로 재산을 날리고 형 두 명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곧이어 아버지가 가족을 버렸고, 어린 스탠리 호는 어머니와 두 누이를 부양해야 했다.

홍콩대학에 진학한 스탠리 호는 성공하려면 공부밖에 방법이 없다는 생각으로 학업에 열중한 끝에 장학생이 되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고 일본군이 홍콩을 점령하자, 1942년 학업을 중단하고 마카오로 피난을 갔다.

[사진/Wiki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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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사업 수완이 빛을 발하다
스탠리 호에게 마카오는 기회의 땅이 되었다. 일본계 무역회사에 취직한 그는 뛰어난 사업 수완과 4개 국어(중국어, 영어, 포르투갈어, 일본어)를 구사하는 외국어 실력이 빛을 발하며, 1년 만에 경영진으로 승진했다. 

이후 자체적으로 건설사를 차렸고, 전후 복구와 함께 엄청난 수익을 거두었다. 하지만 마카오 갱들이 노골적으로 견제를 날리면서 1953년에 홍콩으로 떠났고, 홍콩에서도 부동산 투자를 통해 엄청난 돈을 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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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승장구하며 대성황을 이룬 사업
1961년에는 헨리 폭과 손을 잡고 카지노 독점 운영권을 따냈고 1970년에 레스보아 카지노 호텔을 개장했다. 때마침 대만과 홍콩, 싱가포르 모두 고도성장을 누리고 있을 때여서 마카오 손님들의 수가 매년 늘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중국도 개혁개방에 나서면서 중국 고위층들도 마카오 카지노에 들락날락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스탠리 호는 승승장구해 2001년 카지노 시장 개방 이전까지 마카오 세금의 절반 이상을 냈을 정도로 대성황을 이루었고, 이렇게 번 돈으로 레스토랑 등 다른 사업까지 확장하는 데 성공한다. 그래서 마카오에서 돈을 쓰면 50%는 스탠리 호에게 간다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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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벌의 공세에도 살아남은 그의 명성
1999년 마카오 주권이 중국으로 반환되고 카지노 독점 면허가 2001년 만료되자, 그의 사업이 기울 것이라고 점치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샌즈 그룹과 윈리조트 등 라스베이거스 라이벌의 강력한 공세에도 건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중국 본토 카지노 원정대에 그의 명성이 자자하기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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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오른쪽의 스탠리 호 [사진/Wikimedia]

마카오는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세계적 불황 속에서도 번창했다. 2007년 미국 라스베이거스를 추월하며 '세계 최대 카지노 도시'라는 수식어를 빼앗은 이후 마카오 도박 산업은 불황을 잊었다. ‘스탠리 호’는 이제 나이가 들어 경영일선에서 물러났지만 그가 일군 카지노 제국은 그 명성을 이어갈지 지켜봐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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