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리핀에서 한국인 재력가를 살해하고 암매장한 김모(34)씨 등 3명이 현지에서 체포돼 12일 서울 강남경찰서로 압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전 워커힐 카지노 사장 정낙진 씨(76)의 아들이 필리핀에서 살해된 뒤 암매장된 채 발견됐다. 지난달 13일 필리핀으로 떠난 이후 행방불명된 지 29일 만이다. 경찰은 현지에서 범행을 저지른 일당을 넘겨받아 조사 중이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지난달 21일(현지시간) 필리핀 마닐라에서 증권투자 사업가인 한국인 정모(41)씨를 살해하고 시신을 암매장한 혐의(강도살인 및 사체유기)로 현지에서 체포된 김모(34)씨 등 한국인 3명을 넘겨받아 수사 중이라고 12일 밝혔다. 김씨 등은 8월 22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정씨를 차량으로 납치한 뒤 차로 2시간 떨어진 앙겔레스 시로 이동해 살해하고 암매장한 혐의를 받고 있다. 제3국으로 달아난 한 명은 추적 중이다.

경찰에 따르면 김 씨 일당은 마닐라 정 씨의 집 부근에서 귀가하는 그를 납치한 뒤 2∼3시간 거리인 앙겔레스 시의 김 씨 집으로 데려가 입을 수건으로 막고 목 졸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일당 3명은 정 씨를 살해한 뒤 시 외곽에 있는 고급 전원주택가의 한 임대주택 뒷마당에 시신을 시멘트와 섞어 묻은 것으로 드러났다.

다른 한 명은 정씨에게 마닐라 자택 집 열쇠를 빼앗아 금고에 보관된 2700만원 상당의 필리핀 화폐를 훔치기도 했다. 경찰 조사에서 김씨 등은 “범행 이틀 전에 카지노에서 1억원 이상 잃어 돈을 빼앗으려 했다”며 “입에 수건을 물리고 청테이프로 감아놨는데 숨져 있었다”고 진술했다.

처음부터 살해할 의도는 없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경찰은 정씨의 부검 결과 손으로 목을 조른 정황이 발견돼 계획 살인에 무게를 두고 있다. 김씨 등은 특별한 직업 없이 필리핀에서 카지노를 하려는 한국인들에게 각종 편의를 제공하는 ‘카지노 에이전시’ 업무를 하는 김씨 등은 1년 전부터 정씨와 아는 사이였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안면 있는 사람을 납치하면 쉽게 풀어주지 못한다”며 “고의 살인 가능성을 전제로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씨는 국내 증권가에서 선물옵션 등에 투자하던 사업가로, 필리핀 정부에 2000만원을 주고 수시로 드나들 수 있는 ‘은퇴 비자’를 소유하고 있었다. 아버지인 정모(78)씨는 국내 유명 호텔 카지노 대표를 맡은 바 있다.

정씨는 숨지기 열흘 전인 8월 13일 필리핀으로 출국했고, 가족과 연락이 끊기자 현지로 찾아와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다. 현지 경찰은 휴대전화 추적 끝에 피의자 한명을 검거해 범행 사실을 일체 자백 받고서 지난 8일 정씨의 시신을 발견했고 다른 피의자 2명도 붙잡았다.

경찰은 살해에 가담하고 나서 정씨의 마닐라 자택 금고에서 현금과 여권 등을 훔쳐 해외로 달아난 A씨를 추적 중이다.

김씨 등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말레이시아로 도피한 것으로 알려진 공범 한 명을 인터폴과 공조해 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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