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최지민] 영국 록밴드 라디오헤드가 음원을 해킹당했다. 미공개 음원의 유출을 막으려면 돈을 내놓으라는 해커의 협박에 라디오헤드는 뜻밖의 선택을 했다.

1. 이게 바로 너(해커)와 나(라디오헤드)의 눈높이다. 꿇어라.

라디오헤드가 온라인 음원 구매 사이트 '밴드캠프'에 올린 미공개 음원[연합뉴스제공]
라디오헤드가 온라인 음원 구매 사이트 '밴드캠프'에 올린 미공개 음원[연합뉴스제공]

라디오헤드는 1997년 내놓은 대표작인 정규 3집 '오케이 컴퓨터'(OK Computer)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녹음된 18시간 분량의 미공개 음원이 담겨 있는 온라인 저장소를 지난주 해킹당했다.

이곳에 침입한 '짐브라'라는 이름의 해커는 음원을 관리하던 밴드 보컬 톰 요크에게 유출을 막으려면 15만 달러(약 1억7천만원)를 지불하라고 협박했다. 라디오헤드 측이 요구에 응하지 않자 이후 이 해커는 온라인에 미공개 음원을 공개했다.

하지만 라디오헤드는 경찰에 신고하는 대신 미공개 음원을 18파운드(약 2만 7천원)의 가격에 임시로 발매했다.

그리고 수익금을 환경보호단체 '멸종저항'(Extinction Rebellion)에 기부하기로 했다. 단, 다운로드하지 않고 사이트에서 듣는 것(스트리밍)은 무료다.

기부를 받은 멸종저항 측은 "유례없는 지원"을 해 준 라디오헤드에게 무척 감사하다고 밝혔다. 라디오헤드는 또 자신들의 히트곡 '이디오테크'(Idioteche)'를 이 단체의 새 홍보영상에 사용할 수 있도록 빌려주기도 했다.

2. 라디오헤드, 그들의 사정

라디오헤드 (왼쪽부터 톰 요크, 조니 그린우드, 콜린 그린우드, 에드 오브라이언, 필 셀웨이)
라디오헤드 (왼쪽부터 톰 요크, 조니 그린우드, 콜린 그린우드, 에드 오브라이언, 필 셀웨이)

라디오헤드 기타리스트 조니 그린우드는 "(해킹당한 데 대해) 하소연하거나 무시하는 대신, 우리는 앞으로 18일 동안만 이 음원을 밴드캠프(온라인 음원 구매 사이트)에 올려 두기로 했다"며 "18파운드만 내면 여러분은 우리가 유출을 막기 위해 (해커에게) 돈을 주는 게 나았는지 알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용량이 1.8GB(기가바이트)에 달하는 이 음원에 대해 그린우드는 "아주, 아주 길다. 휴대전화로는 받지 말라"라고 했고, 요크는 "별로 재미는 없을 거다. 이왕 외부에 공개됐으니 우리 모두 싫증이 나서 다른 것으로 넘어갈 때까지 두는 게 낫겠다"고 농담을 섞어 말했다.

3. 팬들의 사정, “팬이라면 반드시 들어야 하는 것”

공연중인 라디오헤드 보컬 톰 요크[연합뉴스제공]
공연중인 라디오헤드 보컬 톰 요크[연합뉴스제공]

이번에 공개된 음원에는 '오케이 컴퓨터'에서 빠졌다가 20년 뒤 재발매된 앨범에 담긴 히트곡 '리프트'(Lift)의 초기 버전 등 미공개 곡을 비롯해 밴드공연 리허설과 요크의 비트박스 등 지금까지 대중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라디오헤드 작업의 흔적들이 담겨 있다.

이 때문에 오랫동안 라디오헤드를 아껴온 팬들은 '숨겨진 보석을 찾아낸 것처럼' 좋아하고 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한 팬은 공개된 음원이 "팬이라면 반드시 들어야 하는 것"이라며 "멋지게 기부하는 것도 응원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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