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이호, 김아련/디자인 이연선]

▶ 아베 피에르(Abbé Pierre)
▶ 출생-사망 / 1912년 8월 5일 ~ 2007년 1월 22일
▶ 국적 / 프랑스
▶ 활동분야 / 성직자

엠마우스 단체를 설립한 피에르 신부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늘 사회적 약자들의 편에서 일생을 빈민 구제 운동에 헌신했다.

-성 프란체스코를 본받아 신부가 된 아베 피에르
아베 피에르는 1912년 프랑스 리옹에서 태어났다. 부모님 모두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고 불우한 이웃을 돕는 봉사 활동을 열심히 했다. 아베 피에르는 어릴 때부터 신부가 되겠다는 마음을 먹은 것은 아니었지만 15세 때 이탈리아 아시시를 여행하며 성 프란체스코 활동에 깊은 감명을 받아 신부가 되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 후 19세에 수도원에 들어가 수도에 전념하다가 1938년 8월 24일 프란체스코회의 재속 사제로 서품을 받고 신부가 되었다. 그로노블 성당에 재직하던 피에르 신부는 제 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레지스탕스 운동에 참여했다. 그는 교회에 많은 유대인들을 숨겨줬고 이들에게 위조 신분증을 만들어 주어 스위스로 내보내는 일을 한다. 이후 전쟁이 끝나고 피에르 신부는 1945년 1월까지 프랑스 해군 소속 군함 장 바르 호의 군종신부로 일하게 된다.

-국회의원으로서 빈민 구제 주택 건립에 힘쓴 피에르 신부
피에르 신부는 레지스탕스 활동으로 두 개의 훈장을 받았다. 이로 인해 프랑스의 군인이자 정치가였던 샤를 드골에게 정계 진출을 권유 받았고 피에르 신부는 로렌 지방의 뫼르트에모젤 지역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하지만 자신이 생각했던 이상과 많이 달랐던 정치에 실망한 후 빈민을 위한 봉사 활동을 적극적으로 시작했다.

1947년 10월 그는 파리 교외의 뇌이플레장스에 있는 낡은 2층집을 수리해 ‘엠마우스’라는 무료 숙박시설을 만들었다. 이후 빈민 구제용 주택 건립 사업을 돕기 시작하면서 ‘엠마우스’는 빈민을 돕는 공동체로 변화했다. 엠마우스는 공유지에 천막촌과 판자촌을 지어 집이 없는 사람들에게 거처를 마련해주었다.

-파리의 거리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구한 피에르 신부
당시 프랑스는 전쟁을 겪은 후라 주택 부족 문제가 심각했다. 국회의원이었던 피에르 신부조차도 집을 구하지 못해 거리를 떠돌았다. 피에르 신부는 서민의 주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긴급 주택 단지 계획 법안을 여러 번 제출했지만 통과되지 못했다. 1951년 국회의원직에서 물러나 공동체 운영의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자 직접 거리에서 구걸을 하며 혼자 후원금을 마련했다.

1954년 겨울에 추위가 심하게 닥치자 프랑스 거리에는 죽어가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엠마우스는 길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라디오를 통해 임시 구호소를 만들어 달라는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했다. 이를 계기로 프랑스 국민들의 성금과 지원으로 50여개 임시 구호소를 파리에 만들었다. 이 사건으로 피에르 신부는 대표적인 빈민 운동의 상징이 되었고 엠마우스 운동은 프랑스 전역으로 확대되었다.

-프랑스인이 가장 사랑하는 인물 ‘피에르 신부’
피에르 신부는 엠마우스 운동을 하며 슈바이처, 돔 헬더 카마라, 테레사 수녀, 비노바 바베 등과 함께 빈민 운동에 대한 교류를 했다. 그는 빈민 운동뿐만 아니라 사회의 여러 문제들에 귀를 기울였다. 사제의 결혼, 여성의 성직 참여, 피임 기구 사용 등 성직자로서 민감한 문제에도 찬성 의견을 과감하게 내 반발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그는 핍박당한 유대인들을 도왔고 항상 사회적 약자들의 편에 섰다. 피에르 신부가 설립한 엠마우스 단체는 전 세계로 뻗어나갔고 현재는 전 세계 50개국에 시설을 가진 국가적 단체로 성장했다. 빈민을 구호하는 일에 일생을 바친 피에르 신부는 오늘날에 이르러 프랑스인들이 사랑하는 최고의 휴머니스트로 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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