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피플] ‘우상 류현진’의 기록까지 넘은 폰세, 2025년 KBO의 중심에 서다
2025년 KBO리그는 한 투수의 이름으로 기억될 가능성이 크다. 한화 이글스의 코디 폰세(31)가 정규시즌을 지배하며 MVP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기록의 총합만으로도 설명은 충분했지만, 그의 도약에는 성적을 넘어선 서사가 있었다.
폰세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성장하며 MLB LA 다저스 중계를 통해 “코리안 몬스터” 류현진을 동경한 소년이었다. 세월이 흘러 그는 한화의 외국인 에이스가 되었고, 마침내 우상이 19년 전 섰던 바로 그 자리 ‘정규시즌 MVP’에 올랐다. 24일 서울 송파구 롯데호텔 월드에서 열린 2025 신한 SOL뱅크 KBO 시상식에서 폰세는 기자단 투표 125표 중 96표(76%)를 획득하며 압도적인 표차로 MVP를 거머쥐었다. 한화에서 MVP가 나온 것은 2006년 류현진 이후 처음이며, 외국인 선수로는 구단 역사상 최초다.
폰세가 우상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 일화는 많다. 류현진의 사인을 문신으로 새기고 싶다는 농담, 아내와 함께 밤마다 인터넷을 뒤져 정통 방식으로 유니폼을 구하려 했던 이야기, 올스타전에서 류현진의 토론토 시절 유니폼을 입고 왼손 투구폼을 완벽하게 재현한 ‘시구 오마주’는 팬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마운드 위에서 그는 더 이상 ‘팬’이 아니었다. 기록은 냉정했고, 그 속에서 폰세는 우상의 숫자들을 하나둘 넘어섰다.
폰세의 2025년 성적은 KBO 리그에서 단순히 뛰어난 수준을 넘어 ‘독식’에 가깝다. 29경기 17승 1패, 평균자책점 1.89, 탈삼진 252개, 승률 0.944. 다승·평균자책점·탈삼진·승률 등 투수 4개 부문을 모두 석권한 ‘4관왕’은 KBO 외국인 투수 최초이며, 역대 전체로도 구대성(1996), 윤석민(2011)에 이어 세 번째다.
특히 5월 17일 SSG전에서 작성한 한 경기 18탈삼진은 2010년 류현진의 17개를 넘어선 새로운 단일경기 최다 기록이었다. 시즌 막판에는 단일 시즌 최다 탈삼진(252개)도 경신했다. 기존 기록은 2021년 아리엘 미란다의 225개였다. 규정이닝 평균자책점 1점대는 2010년 류현진(1.82) 이후 15년 만이며, 이닝당 출루허용(0.94)은 21세기 최저치다. 개막 이후 17연승 역시 새로운 리그 기록이다.
폰세의 존재감은 한화의 팀 성적과도 연결된다. 한화는 올해 전반기 33년 만에 단독 1위를 기록했고, 시즌 최종 성적은 한국시리즈 준우승까지 이어졌다. 다년간 하위권에 머물렀던 팀이 상위권 싸움의 중심으로 이동한 데에는 폰세의 안정적인 이닝 소화와 압도적인 구위가 크게 작용했다. 폰세는 이날 수상 소감에서 “포수 최재훈에게 가장 큰 감사를 전하고 싶다”며 “멍이 들고 혹이 날 정도로 뛰어준 형”이라고 말하며 동료를 향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또한 “내 진짜 MVP는 아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제 남은 화두는 ‘다음 시즌’이다. 최근 KBO MVP 외국인 선수는 대부분 MLB로 복귀했다. 2015년 에릭 테임즈, 2019년 조시 린드블럼, 2023년 에릭 페디 모두 KBO에서 전성기를 보낸 뒤 미국 무대를 다시 찾았다. ESPN과 MLB 네트워크 일각에서는 이미 폰세의 2026년 MLB 복귀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시속 160km에 육박하는 포심, 종으로 급락하는 커브, 슬라이더의 조합은 빅리그에서도 경쟁력을 지닌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한화 구단과 팬들의 바람은 “한 시즌 더”지만, 폰세가 남길 선택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한화 역사상 다섯 번째, 외국인 최초 MVP. 탈삼진 기록을 새로 쓴 시즌. 우상의 기록까지 넘어섰던 장면들. 그리고 ‘팬에서 동료로’라는 독특한 서사. 2025년 코디 폰세가 남긴 족적은 단순한 성과 이상의 무게를 지닌다. 한국 야구는 지금 한 시즌의 지배자를 넘어, 한 시대를 대표할 만한 투수의 탄생을 목격했다. 그리고 질문은 남는다. 그의 다음 마운드는 다시 대서양 건너에 있을까, 아니면 한 시즌 더, 한국에 남아 또 다른 기록을 준비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