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매력평가(PPP) 물가 차이를 반영한 ‘진짜 소득’ 지표 [지식용어]

2025-11-21     심재민 기자

국가 간 경제 규모나 생활수준을 비교할 때 단순 환율만 사용하면 실제와 다른 결론에 도달하기 쉽다. 같은 10달러라도 한 나라에서는 한 끼 식사에 충분하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간식 하나도 사기 어려운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격 차이를 보정해 국가 간 경제력을 비교하도록 만든 것이 ‘구매력평가(PPP·Purchasing Power Parity)’다. 말 그대로, 각국 통화가 실제로 어느 정도의 물건과 서비스를 구매할 수 있는지를 공통 기준으로 맞추는 방식이다.

구매력평가(PPP)는 국가마다 다른 물가 수준을 동일한 기준으로 환산해, 통화의 ‘실질 구매력’을 비교하는 방법이다. 즉, “같은 돈으로 실제로 무엇을 얼마나 살 수 있는가”를 기준으로 국가 간 경제력을 판단하는 개념이다. 절대적 PPP는 물가수준 비율이 곧 적정 환율이어야 한다고 보고, 상대적 PPP는 환율 변화가 양국의 물가상승률 차이와 비슷하게 움직여야 한다고 설명한다. 이런 이유로 PPP 기준 국내총생산(GDP)은 단순 환율 계산보다 실제 생활수준을 비교하는 데 적합한 지표로 활용된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의 세계경제전망(WEO)은 이 지표가 왜 중요한지 잘 보여준다. IMF에 따르면 올해 한국의 PPP 기준 1인당 GDP는 6만5,080달러로 전망된다. 지난해보다 3.5% 증가한 수치이며 세계 35위권이다. 한국의 PPP 기준 1인당 GDP는 1980년 2,200달러에서 2020년 4만7,881달러까지 꾸준히 늘어, 경제 성장과 생활 수준 개선의 흐름을 반영해 왔다.

대만과의 비교는 PPP 개념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올해 대만의 PPP 기준 1인당 GDP는 8만5,127달러로 한국보다 약 2만 달러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만은 명목 기준 1인당 GDP에서도 올해 22년 만에 한국을 앞지를 것으로 보이지만, PPP 기준에서는 이미 오랜 기간 우위였다. 이유는 단순하다. 대만의 물가 상승률이 낮고 생활물가가 안정적으로 유지돼 왔기 때문이다. 주요 투자은행들이 전망한 대만의 올해 물가상승률은 평균 1.7% 수준으로, 한국보다 낮은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반면 한국은 팬데믹 이후 높은 물가 상승률을 기록해 왔다. 2022년에는 물가가 5%대를 넘었고, 최근에도 가공식품·수산물·축산물 가격이 꾸준히 오르며 체감 부담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은행은 유통비용 증가, 농가 생산성 저하, 공급 다양성 부족 등이 물가 상승을 자극하는 구조적 요인이라고 설명한다.

PPP는 외환시장에서 실제 환율을 예측하는 도구가 아니다. 각 나라의 물가 차이를 반영해 경제 규모와 생활수준을 비교하기 위한 ‘보정 장치’다. 세계은행, IMF, OECD 등이 GDP 통계를 발표할 때 PPP 기준을 함께 제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명목 소득만으로는 체감 생활수준을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구매력평가는 국가 간 경제를 바라볼 때 표면적인 숫자보다 실제 삶의 조건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지표다. 물가라는 변수를 고려해 드러나는 진짜 소득 수준 ‘PPP’는 그 차이를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시선뉴스=심재민 기자 / 디자인=김선희 p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