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창] 도시 개발에 사라졌다가 부활한 한강 ‘밤섬’...도심 속 희귀한 습지

2025-11-17     박대명 pro

[출처 : 서울기록원, 서울연구데이터서비스, 람사르 습지 홈페이지, 영등포구 문화관광 홈페이지, 픽셀스, 언스플레쉬,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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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위를 달리는 수많은 다리들 가운데, 서강대교 한가운데 자리해 무성한 수풀에 둘러싸여 있는 한 섬이 있습니다. 바로 ‘밤섬’입니다. 지금은 청둥오리와 원앙 같은 철새들이 머무는 생태의 보고지만, 과거 이곳은 사람들이 모여 살던 마을이기도 했는데요... 오늘은 사라졌다가 다시 부활한 ‘밤섬’의 이야기를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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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모양이 마치 밤알을 깐 것처럼 생겼다 해서 붙여진 이름 ‘밤섬’. 조선시대에는 ‘밤 율’자를 써서 ‘율도(栗島)’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고려 시대에는 죄인을 귀양 보내던 섬으로 쓰였고, 조선 개국 이후에는 배를 만드는 장인들이 정착하면서 조선업과 뱃사공, 뽕나무 재배와 잠업까지 번성했습니다. 심지어 20세기 중반까지도 수백 명의 주민들이 모여 살던 활기찬 마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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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1960년대 서울의 대규모 개발은 밤섬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습니다. 금융 중심지로 키우려던 여의도가 잦은 홍수에 늘 잠기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한강의 폭을 넓히고 제방을 세우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한강의 흐름을 가로막던 밤섬이었습니다.

결국 당시 정부는 1968년 2월 섬을 폭파했고, 그 잔해는 여의도 개발을 위한 제방을 쌓는 자재로 사용했습니다. 당시 섬에 살던 60여 가구, 400여 명의 주민들은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고 마포 와우산 일대로 이주해야 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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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러한 밤섬은 시간이 흐르면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한강의 유속에 의해 토사가 쌓이고, 그 위에 억새와 버드나무가 자라면서 점차 섬이 복원되기 시작했던 건데요. 폭파 전 축구장 7개 크기였던 섬은 오늘날 40개 크기 이상으로 넓어졌고, 결국 위 밤섬과 아래 밤섬 총 두 개의 섬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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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섬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뒤, 인간의 발길이 닿질 않자, 자연은 놀라운 속도로 회복했습니다. 섬에는 버드나무숲과 모래톱이 형성됐고, 이를 터전 삼아 철새들이 하나둘 모여들었습니다. 그 결과 밤섬은 멸종 위기종 흰꼬리수리와 새매를 비롯해 50여 종의 새들이 찾는, 서울 도심 속 보기 드문 철새 도래지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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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서울시는 밤섬의 가치를 인정해 1999년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했고, 2012년에는 국제적으로도 희귀한 도시 내부 습지로 평가받아 ‘람사르 습지’에 등록했습니다. 현재 밤섬은 일반인의 출입은 제한되지만, 여의도와 마포에서 밤섬을 조망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 계절별 철새와 각종 텃새들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출처 : 서울기록원, 서울연구데이터서비스, 람사르 습지 홈페이지, 영등포구 문화관광 홈페이지, 픽셀스, 언스플레쉬,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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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도시 개발로 사라졌다가 자연의 보고로 되살아난 밤섬. 자연은 밤섬을 통해 여전히 우리에게 쉼과 공존의 가치를 또 자연의 소중함을 전하고 있습니다.

시선뉴스=박대명P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