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뉴스] 도널드 트럼프, 다 가진 그가 ‘노벨상’에 집착하는 이유
떼를 쓰듯 노벨 평화상 노래를 불렀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재집권 첫해에 노벨평화상을 거머쥐겠다는 그의 꿈은 좌절됐다.
도널드 트럼프는 왜, 노벨상에 집착할까?
“인류의 우애를 위한 상” 노벨상은 누가 받나?
1895년, 스웨덴의 화학자 알프레드 노벨은 유언장에 이렇게 남겼다. “국가 간의 우애, 상비군 폐지 또는 감축, 평화 회의 개최 및 증진을 위해 가장 많은 또는 가장 훌륭한 일을 한 사람에게 노벨평화상을 수여하라.” 그로부터 130년이 지난 오늘, 이 이상은 여전히 인류의 최고 가치로 남아 있다.
10월 13일(현지시간) 노벨위원회는 2025년 노벨상 수상자 14명의 명단을 확정했다. 경제학상에는 조엘 모키어, 필리프 아기옹, 피터 하윗이 이름을 올렸고, 평화상은 베네수엘라의 야권 지도자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에게 돌아갔다. 위원회는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타파를 위해 평생을 바친 인물”로 마차도를 소개했다. 그러나 전 세계 언론의 시선은 또 다른 이름을 주목했다. 그간 노벨상에 집착해온 ‘도널드 트럼프’, 그의 이름은 노벨상 명단에 없었다.
“내가 여덟 개의 전쟁을 끝냈다” 트럼프의 자기 서사
트럼프 대통령은 재집권 첫해부터 노벨평화상을 거머쥐겠다는 뜻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수상자 발표를 하루 앞둔 10월 9일, 그는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역사상 누구도 9개월 만에 8개의 전쟁을 해결한 적이 없었다. 나는 8개의 전쟁을 멈췄다” 그는 이스라엘-이란, 인도-파키스탄, 이스라엘-하마스 등 세계 각지의 무력 충돌을 자신이 중재했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하마스 간 가자 평화구상 1단계 합의 역시 자신의 업적으로 포함시켰다.
트럼프는 이러한 ‘성과’를 근거로 “진정한 평화 중재자야말로 노벨상이 마땅히 찾아야 할 주인”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유엔 연설에서 “내가 노벨평화상을 받아야 한다고 다들 그런다”고 했고, 군 장성들 앞에서는 “미국이 상을 받지 못한다는 건 모욕”이라고도 말했다.
그러나, 노벨의 이상과 ‘미국 우선주의’의 충돌
그러나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기대가 애초부터 실현 가능성이 낮았다고 지적한다. AFP통신은 “그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는 노벨의 평화정신과 정면으로 충돌한다”고 보도했다. 노벨이 남긴 ‘국가 간 우애’와 ‘군비 감축’의 이상은 트럼프의 자국 중심 외교, 군사적 압박 정책과는 대척점에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노벨위원회는 국제협력과 제도적 평화를 지켜온 인물들을 꾸준히 주목해왔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의 일방주의를 강화한 트럼프가 선택받기 어려운 건 자연스러운 결과일지도 모른다.
‘평화 중재자’의 모순_무력 개입과 불완전한 종전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전쟁을 멈췄다”고 주장했지만, 실제 사례를 보면 ‘종전’보다는 ‘개입’의 성격이 짙었다. 그가 언급한 이란-이스라엘 갈등은 미군이 이란 핵시설을 공격한 직후 휴전에 들어간 사건으로, 폭격 명령을 내린 당사자 역시 트럼프였다. 인도-파키스탄의 휴전도 파키스탄은 그의 중재를 인정했지만, 인도는 “트럼프의 역할은 없었다”고 선을 그었다. 그럼에도 트럼프는 스스로를 “9개월 만에 8개의 전쟁을 끝낸 대통령”이라며 ‘평화의 상징’으로 포장했다. 그의 주장은, 현실의 불안정한 정세와는 별개로, ‘평화’를 자신의 정치적 브랜드로 소비하려는 시도로 읽혔다.
여론의 냉담함과 ‘늦은 출발’
미국 내 여론조차도 그의 노벨상 도전에 호의적이지 않았다. 워싱턴포스트(WP)와 입소스가 공동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76%가 트럼프의 노벨평화상 수상에 부정적이라고 답했다. ‘자격이 있다’는 응답은 22%에 그쳤다.
또한 행정 절차상으로도 한계가 있었다. 올해 노벨평화상 추천 마감일은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열흘 뒤인 1월 31일이었다. 즉, 그는 사실상 후보로 검토될 시간조차 충분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수상 가능성을 높이기엔 물리적으로도, 외교적으로도 늦은 출발이었다”고 평가했다.
도널드 트럼프는 도대체 왜, 이토록 노벨상에 집착할까? 거기엔 오바마의 그림자, 즉 ‘자격 콤플렉스’의 정치학이 스며있다. 트럼프의 집착은 전임자 버락 오바마에 대한 의식과 무관하지 않다. 오바마는 2009년, 취임 첫해에 핵확산 방지와 중동 평화노력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트럼프는 이에 대해 “그는 우리나라를 망치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안 했는데 상을 받았다”고 비판했다.
즉 그에게 노벨상은 단순한 명예가 아니라 정치적 복수의 수단이자 ‘정당성의 상징’이다. “오바마가 받았는데 왜 나는 못 받느냐”는 질문이 그의 재집권 내내 이어진 집착의 동력이 된 것이다. 트럼프에게 노벨상은 단순한 상이 아니다. 그것은 세계가 자신을 인정하는 ‘정치적 거울’인 셈이다.
하지만 세계는 여전히 묻는다. 그가 원한 것은 평화였을까, 아니면 평화를 통해 얻을 인정의 무게였을까.
시선뉴스=심재민 기자 / 디자인=김선희 p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