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판단의 빈틈을 메우는 구조…‘휴먼 인 더 루프(HITL)’ [지식용어]
인공지능이 생활과 산업 전반에 깊숙이 자리 잡았지만, 자동화만으로 모든 판단이 완성되지는 않는다. 데이터의 편향과 맥락의 오독, 과도한 일반화가 빚는 오류는 여전히 인간의 개입을 필요로 한다. ‘트렌드 코리아 2026’이 내년의 주요 화두로 인공지능(AI)을 꼽으며 첫 번째 키워드로 제시한 ‘휴먼 인 더 루프(Human in the loop, HITL)’는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휴먼 인 더 루프’란 인공지능 모델의 훈련·조정·검증 과정 전반에 인간이 반복적으로 개입해 의사결정을 보완하는 방식을 말한다. 이는 인공지능이 고도화될수록 오히려 인간의 역할이 더 중요해진다는 역설적 흐름으로, 단순히 결과를 확인하는 수준이 아니라 데이터에 의미를 부여하는 라벨링, 모델의 조정, 결과의 검증 등 전 과정에서 인간의 판단이 지속적으로 개입한다. 이러한 순환적 피드백 루프를 통해 인공지능은 인간의 기준과 판단력을 학습하며 정확도와 신뢰도를 높인다. 비슷한 개념인 액티브 러닝이 불확실한 데이터만을 인간에게 검증받는 절차에 초점을 둔다면, 휴먼 인 더 루프는 데이터셋 생성부터 최종 평가까지 모든 단계를 포괄한다.
Human in the loop, 직역하면 ‘루프 안에 사람이 있다’는 뜻이다. 여기서 ‘루프(loop)’는 인공지능이 작동하는 자동화 시스템을 의미한다. 이 말은 AI가 아무리 정교해져도 그 과정 안에는 반드시 인간이 있어야 함을 전제한다. 단순한 기술 용어를 넘어, 인공지능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에 대한 하나의 철학적 관점으로 읽힌다. AI가 일상과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는 지금, 인간이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AI가 올바른 방향으로 작동하도록 명령하고, 그 결과를 검증하며, 최종적으로 책임을 지는 것이다. 누구나 AI를 사용할 수 있지만, 그 미래를 결정짓는 것은 결국 어떻게 사용하느냐다.
휴먼 인 더 루프의 구조는 순환과 누적의 원리를 따른다. 인간이 데이터를 라벨링하고, 인공지능이 이를 학습한 뒤, 결과를 다시 인간이 평가하고 교정한다. 이렇게 반복되는 과정에서 인간의 직관과 분별이 알고리즘의 기준 속에 스며든다. 예를 들어 이미지 인식에서 인공지능은 그림자나 일부만 보이는 사물을 혼동할 수 있지만, 인간이 이를 바로잡음으로써 모델은 점차 세밀한 인식 능력을 갖추게 된다. 결국 인공지능의 성장 과정에는 인간의 판단이 내장되어 있는 셈이다.
휴먼 인 더 루프는 단순히 사람이 기계를 돕는 보조 장치가 아니라, 품질을 끌어올리는 필수 메커니즘이다. 데이터를 다루는 인력을 적절히 구성하고, 작업의 목표와 기준을 명확히 설정한 뒤, 라벨링과 검증을 반복하면서 품질 향상 과정을 체계화한다. 특히 검토 단계를 맨 마지막에 두지 않고, 데이터 수집과 설계 단계부터 품질 관리(QA)를 병행하는 것이 핵심이다. 결과에서 오류가 발견되면 그 원인을 설계나 수집 단계까지 거슬러 올라가 수정하는 ‘역추적 방식’의 품질 관리가 바로 이 구조의 특징이다. 또한 인공지능이 사전 어노테이션을 달거나 자동으로 오류를 탐지하도록 설계하면 인간의 작업 효율과 데이터의 신뢰도가 함께 높아진다.
이처럼 인간과 인공지능의 협업 구조는 의료, 자율주행, 금융, 번역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용되고 있다. 의료 진단에서는 인간이 개입한 AI 모델이 단독 모델보다 높은 정확도를 보였고, 생성형 AI의 분야에서는 품질 관리와 윤리적 판단을 위해 인간의 감독이 필수적으로 작동한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정교해져도, 인간의 판단이 빠진 기술은 현실의 복잡성을 온전히 해석하지 못한다는 점이 여러 사례에서 확인되고 있다.
다만 인간의 개입이 항상 긍정적인 결과를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때로 인공지능의 판단을 과신하거나, 반대로 불필요하게 수정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따라서 휴먼 인 더 루프의 효과는 인간과 시스템 간의 상호작용을 얼마나 정교하게 설계하고 평가하느냐에 달려 있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 개입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개입하느냐다. 휴먼 인 더 루프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책임 있는 인공지능(Responsible AI)을 구현하기 위한 구조로 기능해야 한다.
완전한 자동화의 시대를 향해 가고 있지만, 인간이 사라진 기술은 아직 없다. 오히려 인공지능이 사회의 중심으로 들어올수록 인간은 그 내부의 방향을 결정짓는 존재로 남는다. 휴먼 인 더 루프, 즉 ‘루프 안의 인간’은 인공지능 시대가 지켜야 할 가장 인간적인 안전장치이자, 기술을 인간답게 만드는 마지막 변수일 것이다.
시선뉴스=심재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