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피플] ‘짐바브웨의 황금 소녀’에서 IOC 수장으로…첫 여성 위원장 ‘커스티 코벤트리’

선수에서 행정가로, 유리천장을 넘어 ‘포용의 올림픽’을 설계하다

2025-11-05     양원민 기자

국가나 지역을 넘어 전 세계 각계각층에서 존경받는 사람들. 그런 역량을 갖춘 인재이자 국가나 기업을 ‘글로벌 리더’라고 부른다. 역사 속 그리고 현재의 시대를 이끌고 존경받는 사람들은 누가 있을까. 그들의 삶의 기록과 가치관 등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유럽 남성 중심의 보수적 조직으로 여겨지던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짐바브웨의 수영 영웅에서 스포츠 외교의 최전선으로 올라선 커스티 코벤트리(Kirsty Coventry)가 제10대 IOC 위원장에 선출된 것이다. IOC 131년 역사상 첫 여성, 첫 아프리카 출신, 첫 짐바브웨인 위원장이란 타이틀은 상징을 넘어 스포츠 거버넌스의 지형 변화를 예고한다.

커스티 코벤트리/국제올림픽위원회

짐바브웨의 황금 소녀
코벤트리는 1983년 짐바브웨 하라레에서 태어나 아홉 살 무렵 바르셀로나올림픽을 보며 올림픽 금메달을 꿈꿨다. 2000년 시드니 대회에서 자국 수영선수 최초로 올림픽 준결승에 오른 그는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200m 배영 금메달, 100m 배영 은메달, 200m 개인혼영 동메달을 따며 세계 무대에 이름을 새겼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도 200m 배영 금메달과 은메달 3개를 보태며 올림픽 통산 7개의 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는 아프리카 선수 최다 올림픽 메달 기록으로, 짐바브웨가 깊은 정치·사회적 분열을 겪던 시기에 ‘우리에게도 가능하다’는 집단적 자긍심을 일으킨 장면으로 남았다. 짐바브웨의 ‘황금 소녀’라는 별칭은 이때 굳어졌다.

커스티 코벤트리/위키백과

선수에서 행정가로
현역 은퇴 후 코벤트리는 곧장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고향으로 돌아가 아이들에게 수영을 가르치고, 재단을 만들어 지역 스포츠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이 경험은 그를 ‘정책’의 세계로 이끌었다. 2018년, 그는 짐바브웨 청소년·스포츠·예술·레크리에이션부 장관에 임명되며 현장과 정책을 잇는 행정가 코스를 밟기 시작했다.

국내적 한계와 비판도 마주했다. 노후 시설, 예산 제약, 거버넌스 신뢰 문제 등 쉽지 않은 과제를 통과하며 “변화를 만들려면 안에서 뛰어야 한다”는 신념을 확인했다. 같은 시기 IOC 선수위원회 위원장과 집행위원을 맡아 국제 거버넌스 경험을 쌓은 것도 오늘의 리더십에 밑거름이 됐다.

커스티 코벤트리/국제올림픽위원회

첫 여성·첫 아프리카인 IOC 위원장
코벤트리는 2025년 3월 IOC 총회에서 1차 투표 과반으로 제10대 위원장에 선출됐다. ‘우리는 함께일 때 더 멀리 간다(I am because we are)’는 메시지를 전면에 내세우며 선수 중심, 포용, 투명 거버넌스를 약속했다. 위원장 임기는 8년이며 한 차례 4년 연장이 가능해 최대 12년간 조직을 이끌 수 있다. 6월 하순 공식 취임과 함께 그는 “올림픽이 다음 세대에게 영감이 되고, 공동체를 묶는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는 목표를 재확인했다.

의제도 분명하다. 경기력·흥행을 넘어 성평등과 선수 복지, 반도핑·거버넌스 투명성, 디지털 전환과 기후 지속가능성까지 ‘21세기형 올림픽 가치 사슬’을 재설계하겠다는 구상이다. 팬과 지역사회의 참여를 넓히면서, 개최 도시의 지속가능한 유산을 남기는 모델을 정착시키는 것이 핵심이다.

순탄한 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정치와 스포츠의 경계, 중립성 논란, 개최권 남용과 비용 폭증 논의, 디지털 시대의 팬 경험 혁신 등 난제는 산적해 있다. 첫 여성·첫 아프리카인이라는 상징은 강력한 추진력인 동시에 냉정한 평가의 기준이기도 하다. 코벤트리는 “혼자 가면 빨리 가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간다”는 원칙으로 해법을 찾겠다고 말한다.

커스티 코벤트리는 새로운 시대의 IOC에 요구되는 세 가지 축(포용, 신뢰, 지속가능)을 자신의 서사와 정책 비전으로 연결해냈다. ‘짐바브웨의 황금 소녀’가 설계하는 ‘포용의 올림픽’은 이제 막 출발선에 섰다. 유리천장을 깨고 들어온 첫 발걸음이, 다음 세대에게는 더 넓은 하늘이 되길 기대한다.

시선뉴스=양원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