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뉴스] 번역 한 줄의 파장…잘못된 번역이 만든 역사적 오해들

2025-09-16     양원민 기자

다른 이와 소통을 하다 보면 내가 말했던 것과는 다른 의도로 해석되거나, 각자의 견해나 철학, 상황 등에 의해 오해가 생기기도 한다. 특히 다른 언어 간의 소통, 기기를 통한 소통 등에선 더욱이 이런 일들이 쉽게 생길 수 있다. 잘못된 번역과 해석, 오류가 낳은 역사적 사건들을 되짚어본다.

모쿠사츠(묵살)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은 단어 하나에 운명이 갈렸다. 당시 일본 수상 스즈키 간타로는 항복을 권고하는 연합국의 포츠담 선언에 대해 “모쿠사츠(黙殺·묵살)”라고 답했다. 이 단어는 ‘말을 삼가다’와 ‘무시한다’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일본은 말을 아끼려는 의미로 답했다.

하지만 미국 측에서 이 단어가 ‘무시한다’는 뜻으로 해석되며 일본이 항복 의사가 없다는 것으로 판단되었다. 결국 연합군은 8월 6일 히로시마에 원자 폭탄을 투하하고, 8월 9일에는 나가사키에 또 다른 원자 폭탄을 투하하며 대응했다.

흐루쇼프의 발언
냉전시대인 1956년, 소련 흐루쇼프 공산당 서기장의 발언도 좋은 예시다. 당시 흐루쇼프 서기장은 서방세계의 대사들을 상대로 “We will bury you”라고 말했는데, 이 발언이 ‘당신들을 묻어버리겠다’로 직역되어 양 진영 간 긴장감이 고조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에 대한 실제 러시아어 뉘앙스와 일부 학자의 견해들에 따르면 그의 발언은 ‘자본주의는 역사 속에서 무너질 것이다’에 가깝다고 한다. 이 사건은 통역의 작은 차이가 외교적 긴장을 고조​시키고, 대외관계의 판도를 바꿀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로 남았다.

‘선악과=사과’는 오역?
성경책에는 사과가 등장하지 않는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라고만 등장한다. 구약성경의 주무대인 팔레스타인 지역에선 가장 흔한 과일인 무화과를 선악과로 받아들였다.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성당에 그린 ‘천지창조’에서도 선악과가 열리는 나무는 무화과나무다. 

그런데 왜 선악과가 사과로 굳어졌을까. 히브리 성경에서는 모든 열매를 뜻하는 ‘페리(peri)’라는 단어가 쓰였으나, 라틴어 번역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 번역자인 히에로니무스는 이를 ‘말룸(malum)’으로 옮겼는데, 이 단어는 사과를 뜻함과 동시에 ‘악(惡)’과 발음이 유사했다.

결국 ‘사과’와 ‘악’이란 단어의 중의적 의미가 겹치면서 언어유희가 만들어졌다. 이 말장난이 중세 기독교 시대에 인류 원죄를 강조하는 맥락과 맞물려, 선악과를 곧 ‘사과’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한편, 기독교 전파 과정의 산물이란 해석도 있다. 사과는 북유럽신화와 켈트신화에서 신들에게 영원한 청춘을 안겨주는 열매로 신성시된다. 그래서 이런 이교도적 신앙을 약화하고자 일부러 사과를 금단의 열매로 격하했다는 것이다.

감지시스템의 오류
미사일 감지시스템의 오류로 핵전쟁이 발발할 뻔하기도 했다. 1983년 9월 26일 소련 핵무기 관제센터에서 당직을 섰던 스타니슬라프 페트로프 전 소련군 방공중령은 인공위성을 이용한 감지시스템이 미군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5기를 발사했다는 경보를 울린 것을 수신했다.

하지만 그는 이를 오작동이라고 판단하고 “컴퓨터의 오류로 여겨진다”고 상부에 보고했다. 이후 오경보는 소련의 첩보위성이 햇빛의 반사현상을 잘못 해석했기 때문으로 밝혀졌다. 만약 페트로프가 경보에 따라 미국이 핵 공격을 개시했다고 보고했다면 당시 미국과 냉전 상태였던 소련은 대량 핵무기로 전면 보복공격에 나섰을 것이 자명했다.

작은 오해가 거대한 파국으로 번질 수 있다. 그리고 그 오해를 줄이는 가장 큰 힘은 정확한 소통이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의 번역 차이가 때로는 전쟁과 평화, 신화와 믿음을 흔든다. 오늘날 인공지능 번역기와 자동화 시스템이 널리 쓰이는 시대에도 언어의 뉘앙스와 맥락을 정확히 읽는 감각은 여전히 필요하다.

시선뉴스=양원민 기자 / 디자인=김선희 p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