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뉴스] 노동시장에 불어오는 새 바람...‘주 4.5일제’와 ‘정년연장’
21년 전 토요일에 출근하던 관행을 버리고 주5일제가 처음 들어온 뒤, 한국 노동시장이 또 한 번 변화 앞에 섰다. 노동계는 ‘주 4.5일제’와 ‘정년연장’을 요구하고 나섰는데, 기업과 정부, 여론이 맞물리며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어떤 이야기가 오가고 어떻게 바뀌게 될까. 노동시장에 불고 있는 변화의 바람을 살펴본다.
주 4.5일제-등장 배경
지난 8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우리나라 임금 근로자의 연평균 근로시간은 1천904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천719시간에 비해 185시간 많았다. OECD 회원국 중 우리나라보다 근로시간이 긴 곳은 콜롬비아, 멕시코, 코스타리카, 칠레, 이스라엘 등 5개국뿐이었다.
인공지능(AI) 확산과 함께 생산성 혁신이 기업 경쟁력의 핵심으로 떠오른 가운데 이 같은 장시간 노동이 근로자의 삶의 질뿐만 아니라 경제 활력마저 저해한다는 지적이 주4.5일제 논의에 불을 지폈다.
주 4.5일제-어떻게?
주 4.5일제의 대표적 모델은 금요일 ‘반일’(오전 근무·오후 휴무) 또는 격주 금요일 휴무가 논의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근로시간 총량을 줄이되 생산성·성과를 유지하는 게 핵심 과제다. 정부·노동계·산업계가 시범 도입과 제도 설계를 논의하는 한편, 업종·규모별 맞춤형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주 4.5일제-금융권 ‘선 도입’ 주장
이러한 논의가 이뤄지는 와중 금융노조는 지난 8일 “금융권이 먼저 4.5일제를 도입해 10년을 두고 전 산업으로 확산시키자”며 총파업 카드를 꺼냈다. 이들은 코로나 시기 영업시간 축소에도 수익성이 유지됐던 경험과 여성 비중이 높은 업계의 돌봄 부담을 줄여 저출생 대응에 기여하겠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주 4.5일제-이미 실험중인 기업들
4.5일제가 제도권에 들기 전 이미 이를 실험하고 있는 기업들도 있다. SK텔레콤·SK스퀘어는 2주 80시간 충족 시 금요일 휴무 ‘해피 프라이데이’를 운영한다. 교육기업 휴넷은 주4일제 전환 뒤 채용 경쟁률과 매출이 상승했고, 보안기업 슈프리마도 주4일제 전환 후 매출·이익이 크게 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주 4.5일제-일은 적게, 임금은 그대로?
한국리서치 조사(2025년 2월) 인용 보도에 따르면, 주 4.5일제 도입 찬성 61%로 공감대가 많았지만, 응답자의 60%는 근무시간이 줄어도 급여는 유지돼야 한다고 봤다. 이러한 이해 충돌 지점이 나오자 향후 논의가 난항을 겪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주 4.5일제-지역·중소기업 “시기상조”
주 4.5일제 도입에 많은 이들이 공감대를 이뤘지만, 부정적인 시각도 있다. 대구상공회의소 조사에서 지역기업 67.9%가 주 4.5일제에 부정적이었다는 조사가 발표됐다. 이유로는 ‘생산성 저하’(42.7%), ‘추가 인건비 부담’(23.4%) 등이 꼽혔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공정·프로세스 개선 컨설팅 등 ‘연착륙 패키지’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정년연장-등장 배경
올해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20.3%에 달하며 우리나라가 초고령사회에 진입했고, 이에 노동력 감소와 연금·복지 부담 증대가 불가피해졌다. 이에 따라 정년연장과 주4.5일제를 결합함으로써 적게 일하고 장기 근속하며 일자리를 나눔으로써 사회경제적 안정성을 높이고 지속가능한 일자리 모델이 가능하다는 것이 현재 논의되고 있는 큰 틀이다.
정년연장-넘어야할 ‘산업안전’ 과제
다만, 정년연장은 고령 근로자의 산업재해 증가 문제와도 맞물려 있다. 통계에 따르면 산재 사망자의 절반가량이 60세 이상에서 발생하고 있다. 건설업·물류업 등 고위험 산업에 고령 인력이 몰리면서 ‘작은 실수→중대재해’로 이어지는 구조가 고착화된 것이다. 전문가들은 정년연장 논의와 함께 맞춤형 안전대책, 직무 재배치, 인체공학적 설비 도입 같은 병행 조치가 필수라고 지적한다.
정년연장-부작용도 숨어있어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심각한 가운데 섣부른 조정은 현재의 격차를 더 심화할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미 2016년 시행된 60세로의 정년 연장에 대해서도 대기업 고령 근로자에 혜택이 집중되고, 소송과 조기퇴직 증가 등 부작용이 잇따랐다는 평가도 나온다.
기업의 리스크
기업 입장에서는 생산성 저하와 추가 인건비 부담이 당면한 걱정거리다. 한국경제인협회에 따르면 정년연장 시 5년 후 60~64세 고령 근로자 고용 비용이 30조2천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25~29세 청년층 90만명을 고용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이런 문제는 해외 생산이나 자동화를 위한 여력이 작은 중소기업들에서 더욱 두드러질 것으로 관측된다.
‘생산성’이 열쇠
결국 주 4.5일제와 정년연장이 성공하려면 결국 ‘생산성 방정식’을 풀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단축된 시간 안에 같은 성과를 내도록 인공지능(AI)·자동화 등 기술 혁신을 적극 도입하고, 직무 재설계와 성과 중심 보상체계를 마련해야 제도가 지속 가능하다는 것이다.
업종별 대응책
또 제조·건설 등 교대·납기 변수가 큰 업종과 금융·IT처럼 서비스업 중심의 업종을 동일한 방식으로 묶기는 어렵다. 따라서 업종별·규모별 맞춤형 모델을 개발하고, 시범사업을 통해 데이터를 축적하는 ‘점진적 접근’이 요구된다.
결국 주 4.5일제와 정년연장은 한국 사회가 맞닥뜨린 저출생·고령화, 장시간 노동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동시에 풀 수 있는 열쇠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단순히 근로시간을 줄이고 정년만 늘리는 방식으로는 한계와 부작용이 불가피하다. 덜 일하고 더 오래 일할 수 있도록 충분한 논의와 세밀한 설계, 점진적 적용이 이뤄지길 바란다.
시선뉴스=양원민 기자 / 디자인=김선희 p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