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피플] ‘할 수 있다’ 꿈과 희망을 전파했던 故 송대관, 영원한 ‘대중’ 가수
시선뉴스=심재민 기자 | "꿈을 안고 왔단다 내가 왔단다. 슬픔도 괴로움도 모두 모두 비켜라. 안 되는 일 없단다 노력하면은 쨍하고 해뜰날 돌아온단다"(故 송대관의 대표곡 ‘해뜰날’ 中)
녹록지 않은 삶 속에서 유독 희망이 되어 주던 노랫말이 많았던 대표 트롯트 가수, 송대관. 지난 7일 별세한 한국 대중가요 역사의 그 자체인 그의 별세 소식에 애도의 물결이 끊임 없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특히 고인의 마지막 방송 무대가 16일 KBS 1TV '전국노래자랑'을 통해 방영되면서 시청자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이날 정오에 방송된 '전국노래자랑' 충청남도 당진시 편에는 고인이 세상을 떠나기 약 100일 전 노래하는 장면이 담겼다. 이 무대는 지난해 10월 22일 충남 당진실내체육관에서 녹화한 것으로, 한 손에는 마이크, 다른 한 손에는 가죽 지갑을 쥐고서 '지갑이 형님'을 열창한 그의 얼굴은 다소 여위었지만 특유의 열정과 목소리만큼은 힘이 넘쳤다.
'해뜰날', '유행가', '네박자' 등 히트곡을 부르며 태진아, 현철, 설운도와 함께 '트로트 사대천왕'으로 불렸던 故 송대관은 지난 7일 79세를 일기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송대관은 가난과 무명 시절을 이겨내고, 그의 노랫말처럼 '쨍하고' 성공한 대표적인 자수성가형 가수였다.
1946년 '판소리의 고장' 전북 정읍에서 태어난 고인은 조부가 독립운동을 해 재산을 일본인들에게 빼앗기면서 어린 시절 소나무 껍질을 벗겨 먹을 정도로 가난했다고 한다. 그는 고등학생 시절 전주방송에서 전속가수로 활동하고, 서울 노래경연대회에서 상을 타는 등 일찌감치 가수로 재능을 드러냈다.
그러나 1967년 '인정 많은 아저씨'로 데뷔한 이후 수년 간 무명 생활을 하며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다 1970년 '당신은 떠났어도'와 1971년 '세월이 약이겠지요'로 이름을 알렸고, 1975년 '해뜰날'이 크게 히트하면서 스타 반열에 올랐다.
스타덤에 올랐지만 마냥 비단길은 아니었다. 송대관은 당대 가수들의 주요 수입원이던 극장 쇼가 사양길로 접어들면서 또다시 생계가 어려워지자 1980년 처가가 있는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그곳에서 10년가량 슈퍼마켓 등 여러 사업을 하다가 고국이 그리워 1980년대 후반 귀국했다. 그러다 1990년대부터 신나고 구수한 멜로디를 앞세워 '차표 한 장', '네 박자', '유행가' 등 많은 히트곡을 발표하며 왕성하게 활동했다. 대중은 그를 '트로트 4대 천왕'으로 불렸고, MBC '10대 최고가수왕', KBS '가요대상' 올해의 가수상, 옥관문화훈장 등 수십 개의 상을 받았다.
20여 년간 탄탄대로를 걷던 그는 2013년 아내의 부동산 투자 실패로 사기 사건에 휘말리며 방송가를 잠시 떠났다가 2015년 무죄 판결을 받는 등 우여곡절도 겪었다. 법정에서 혐의는 벗었지만, 그 과정에서 수백억원대 빚을 떠안게 됐다. 그는 이후 빚을 갚으려 월세살이를 하며 70대의 나이에도 하루 5개의 행사를 소화했다.
그는 수년 전 암 투병을 하고, 이런저런 질병으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면서도 비교적 최근까지 '가요무대' 등 TV 음악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마이크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2008년에는 제2대 대한가수협회장에 취임해 가수들의 권익 신장에 앞장섰다. 2009년 KBS 드라마 '공주가 돌아왔다'와 2011년 임성한 작가의 드라마 SBS '신기생뎐'으로 연기에도 도전했다. 독립운동가의 후손으로 2006년 광복절 보신각 타종 행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송대관은 과거 인터뷰에서 "내 신조가 '인조이 마이 라이프'(Enjoy My Life)다. 재방송 없는 인생인데, 열심히 살아도 늘 부족하다"며 "그러나 지금 부족한 것은 전혀 부끄럽지 않다. 작사·작곡가, 연주인, 제작자, 방송인 등 모두가 힘을 합쳐 나아가다 보면 보다 밝은 내일이 반드시 온다"고 긍정적인 인생관을 드러내 노랫말과 참 닮았다는 찬사가 이어지기도 했다.
'해뜰날'을 비롯한 숱한 히트곡으로 가수로 산 58년 동안 많은 국민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노래를 들려줬고, '시대의 응원가'를 만들어 낸 故 송대관. 고인은 대한민국 트로트의 전성시대를 일궈낸 장본인임은 물론, 많은 사람에게 희망과 위로를 안겨 준 ‘대중’ 가수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