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 지출 초래하는 ‘혼합진료’...필수의료 기피로 이어져 [지식용어]
시선뉴스=양원민 기자ㅣ지난 8월 30일,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는 제6차 회의를 열고 ‘의료개혁 제1차 실행방안’을 심의·의결했다. 의료인력 확충, 지역의료 강화,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 보상체계 공정성 제고 등의 내용을 담은 실행방안은 ‘필수의료종합패키지’라는 이름으로 천천히 성과를 보이고 있는데, 그중 ‘혼합진료 금지’를 두고 의료계에서 특히 반발하고 있다.
‘혼합진료’는 의료기관에서 건강보험 급여와 비급여 진료(시술·처방 등을 포함)를 동시에 시행하는 것이다. 정부는 이를 금지해 필요 이상으로 과도하게 지출되는 의료비·실손보험 지출을 막고자 한다.
혼합진료 금지는 ‘병행진료 급여 제한’이라는 이름으로 이뤄지며, 도수치료·비밸브재건술·하이푸·하지정맥류·다초점렌즈사용 백내장 수술 등 정부가 정한 이른바 ‘과잉 우려가 명백한 비급여’에 대해 적용된다. 급여인 물리치료와 비급여인 도수치료를 묶을 수 없으며, 급여인 백내장 수술을 받으면서 비급여인 다초점 렌즈를 끼워팔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실손보험 도입 후에는 수입을 늘리려는 의료기관과 보험사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면서 비급여 진료가 급격하게 늘었고, 그만큼 환자 부담도 커졌다. 실제로 백내장 수술 후 렌즈삽입이나 물리치료 후 도수치료 등 10대 비급여 실손보험 지출 규모는 지난 2018년 1조 4천억 원에서 3년 만에 두 배 넘게 증가했다.
여기서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의료계에서 비급여 진료 관련 지급액이 전체적으로 상승했지만, 과별로 차이를 보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차이를 보이는 가장 큰 이유는 흔히 인기 학과로 꼽히는 정형외과, 피부과 등은 의사가 값을 마음대로 올릴 수 있는 비급여 진료 항목이 많기 때문이다. 환자들은 이 비급여 진료비용을 주로 실손보험으로 처리하는데, 이는 비급여 시장의 팽창과 인기과 의사의 소득 증가로 다시 이어졌다. 반면 비급여 항목이 적은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등의 의사 소득은 상대적으로 낮아지게 됐다. 그러다 보니 해당 과들은 자연스레 ‘기피과’로 분류됐고, 이는 필수 의료 기피 현상으로 이어졌다.
한편, 의사계는 이러한 ‘급여·비급여 혼합 진료 금지’가 우리나라의 의료서비스를 퇴행시킬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대한개원의협의회(회장 박근태 이하 대개협)는 지난달 13일 열린 추계연수교육 학술세미나에서 정부가 발표한 ‘필수의료정책패키지’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개선을 촉구했다.
대개협은 실제로 우리나라의 우수한 의료서비스는 급여와 비급여 진료의 자율성 보장을 바탕으로 적절한 전문가의 판단을 통해 제공돼 가능했다며, 우선 정부가 과잉의료의 대표적인 예로 제시한 도수치료와 백내장 수술의 경우에도 적절히 시행되면 환자들에게 큰 유익을 제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김완호 대한정형외과의사회장은 “도수치료는 환자에게 유익한 효과를 줄 수 있는 학문적 가치가 분명히 있다”며 “잘못된 일부 케이스 때문에 환자의 진료 선택권을 박탈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정혜욱 대한안과의사회장은 “백내장 수술의 효과는 외국에서도 이미 입증됐고, 수술이 대부분 일생에 한 번 이루어짐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이를 반복적 시술로 취급하며 규제하려 하고 있다”며 “현재는 실손 보험사의 지급 거부로 인해 과잉 수술 문제도 이미 해소된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다초점 노안 백내장 수술 건수도 대법원판결 이후 급격히 줄어들었다”면서 “또 다초점 인공수정체는 수술행위가 아닌 환자의 선택에 의한 비급여 재료이기 때문에 진료와는 별개로 취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해외에서는 과도한 의료비·보험금 지출을 어떻게 방지하고 있을까. 이를 보려면 먼저 우리나라 민간 의료보험을 살펴봐야 한다. 한국은 현재 일정 한도 내에서 사용한 만큼 의료비를 되돌려주는 실손보험이 주를 이룬다. 반면 옆 나라 일본 등에선 미리 정해진 금액만 지급하는 정액형 상품이 대부분이다. 정액형 상품이다 보니 급여·비급여 혼합진료 등으로 보험을 악용할 틈이 적다.
대만도 비슷하다. 건강보험과 별개로 민간 의료보험이 있지만, 한국 실손보험처럼 포괄적으로 보장해주지 않는다. 아울러 보험 회사가 보험금 심사와 지급도 엄격히 관리하기에 의료기관의 무분별한 비급여 진료 유도를 찾아보기 어렵다.
의대 정원 확대로 격화한 정부와 의료계의 마찰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의료계의 참여 없이 출범한 ‘여야의정 협의체’는 현직자의 목소리를 충분히 담지 못하고 있으며, 의료계는 정부의 대책에 부정적인 태도로 일관하며 자신들의 의견만을 내세우고 있다. 각종 의료 개혁이 이뤄지려는 이 시점에, 국민을 위한 더 좋은 정책을 위해 양측이 머리를 맞대는 모습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