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보러 가는 데만 수 시간...식료품점이 없는 지역 ‘식품 사막’ [지식용어]
시선뉴스=양원민 기자ㅣ살림하는 사람이라면 대형마트나 동네 마트, 시장 등 신선한 식재료를 살 수 있는 곳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것이다. 직접 해 먹으면 외식이나 배달해서 먹는 것보다 돈을 아낄 수 있고, 건강 측면에서도 알뜰하게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농촌이나 지방 도시의 경우, 이러한 식료품점이 점점 사라지며 ‘식품 사막’이 되어가고 있다.
‘식품 사막’(Food Desert)은 건강한 식품을 제공하는 식료품점이 부족하거나 멀리 떨어져 있어 저렴하고 영양가 있는 음식을 구하기가 어려운 지역을 뜻하는 말이다. 이 용어는 1990년대 영국에서 빈곤 지역의 주민들이 신선식품을 구하지 못하는 현상을 설명하면서 처음 소개되었고, 2000년대 이후 고령화 속도가 빠른 미국과 일본 등에서 사회 문제 중 하나로 인식되며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식품 사막은 산업화와 도시화를 통해 주거지역이 이분화되며 나타났다. 비교적 소득 수준이 낮은 지역의 주민들은 간편하고 값싼 가공식품들을 주로 소비하기에 신선식품이나 고급 식품을 판매하는 매장들이 철수하며 이러한 현상이 발화한 것이다. 또한 인구 고령화 및 인구 감소, 젠트리피케이션 등도 식료품 사막을 심화시키는 원인으로 꼽힌다.
식품 사막 문제의 심각성은 해당 지역에 사는 주민들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어 대물림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또 식품 사막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비만을 비롯한 각종 건강 위협 요인들을 더 많이 가지게 될 확률이 높다. 따라서 정부를 포함한 공공부문에서 식품 사막에 사는 사람들의 먹거리 및 건강 문제에 관심을 더 쏟아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식품 사막에 대한 개념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으나, 저출산과 수도권·도시 집중화 심화로 이러한 현상이 깊어지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 12일 밝힌 ‘2020년 농림어업총조사’를 보면, 옥천 등 전국 행정리 3만7563개 중 2만7609개(73.5%)는 식료품 소매점이 없다.
이러한 현상을 체감한 옥천군의회는 지난 8월 지역의 식품 사막화 해결을 위해 주민간담회를 열었다. 옥천군의회는 간담회에서 식품 사막에 처한 지역민의 목소리를 듣고 ‘로컬푸드매장 활용’ 등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을 모색했다. 그러나 현재 생필품 배달 방법과 재원 확보 등의 어려움으로 복지 서비스 제공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전북의 상황도 좋지는 않다. JTV의 보도에 따르면 전북에서 소매점이 없는 마을은 전체 마을의 83.6%로 전국에서 가장 많았다. 특히 정읍의 경우, 555개 마을 가운데 518개 마을에 소매점이 없어 식품 구매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바다 건너 일본의 상황은 어떨까. 일본에서도 저출산 고령화 현상이 심화한 후 지방에 거주하는 노인들이 식료품을 제대로 구매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일본은 거주지 인근 500m 이내에 식료품점이 없는 노인을 ‘장보기 약자’로 규정하고 있는데, 그 수는 80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러한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미국은 식료품 사막 거주 주민을 위해 영양 관리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신규 식품점 창업자에게는 세금 지원을 하고 있다. 일본도 식료품 사막 지역에 마트를 여는 유통 기업에게 보조금을 주거나 이동형 마트 서비스를 유도하는 등 관련 정책을 추진 중이다.
우리나라는 아직 이와 관련해 마땅한 정책이 나오지 않고 있다. 땅이 매우 넓어 차량을 이용해야지만 식품 매장에 접근이 가능한 미국 등과 달리, 우리나라는 대중교통과 배달 문화가 잘 마련되어 있고 도시 간 거리가 가까워 식품 사막 문제가 상대적으로 크지는 않은 상황이 주된 원인으로 보인다. 하지만 식품 사막이 심화할수록 인구 유출과 지방 소멸에도 악영향을 미치기에, ‘식품 사막’이 수면으로 떠오른 이 시점, 이에 대응하는 정부와 지자체의 방안들이 마련돼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