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기 유도 현상의 베일을 벗긴 ‘마이클 패러데이’ [인포그래픽_세계인물편]
전자기 유도 현상의 베일을 벗긴 ‘마이클 패러데이’ [인포그래픽_세계인물편]
  • 보도본부 | 이연선 pro
  • 승인 2019.02.09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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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뉴스 조재휘/디자인 이연선]

▶ 마이클 패러데이 (Michael Faraday)
▶ 출생-사망 / 1791. 9. 22. ~ 1867. 8. 25.
▶ 국적 / 영국
▶ 활동분야 / 화학, 물리학

패러데이는 전자기 유도 현상의 비밀을 밝혀 세계를 변화시킬 만큼 위대한 발견과 연구를 끊임없이 해냈다. 아인슈타인은 그를 물리학 발전 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과학자라고 칭송하기도 하였다.

- 패러데이의 어린 시절

패러데이는 1791년에 영국 런던 근교의 서리에서 지극히 평범한 가문에서 태어나 평범하게 자랐다. 패러데이의 집안은 찢어지게 가난했고 그의 아버지는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패러데이가 11살 때 런던 시내로 이사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여전히 적당한 일거리를 찾지 못했고 막노동으로 겨우 생계를 이어갔다.

하지만 이러한 가난도 패러데이의 공부에 대한 열정을 막지 못했다.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인해 학업을 중도에 그만두고 생활고를 짊어져야 했지만 일을 하면서 꾸준히 공부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여가시간을 이용해 공개강의를 들으며 자연철학에 관한 기초 지식을 다졌다.

- 데이비의 조수가 된 패러데이

그러다 영국 과학자 험프리 데이비의 눈에 들어 그의 추천으로 왕립 연구소에서 실험실 조수로 일하게 된다. 이렇게 본격적으로 과학의 전당에 발을 들인 패러데이는 평생을 과학 발전에 헌신한다. 패러데이는 데이비의 지도를 받으면서 화학에 대한 연구와 강의에 전념했다. 그리고 자연산 가성석회에 대한 논문을 작성해 연구 성과를 거두며 영국 과학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 전자기 유도 현상 발견

1820년에 덴마크의 과학자인 외르스테드는 전류가 나침반의 자침을 움직이게 한다는 사실, 즉 전류의 자기 작용을 발견했다. 패러데이는 외르스테드와 반대로 접근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였고 1825~1828년에 전자기유도를 확인하기 위해 몇 가지 실험을 시도했다. 이를 통해 그는 자기 생각을 조금씩 발전시킬 수는 있었지만, 측정 장치에 문제가 있어 원하는 결과를 얻는 데에는 실패했다. 하지만 패러데이의 전자기유도에 관한 실험은 계속되었다.

- 패러데이 전기 분해 법칙

결국 1831년 7월 패러데이는 수차례 실패를 겪은 끝에 마침내 자기를 전기로 전환하는 실험에 성공하여 비로소 전자기 유도 현상의 베일을 벗길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성과를 기초로 하여 마침내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전자기 유도 법칙을 완성했다. 전자기 유도 현상의 발견과 전자기 유도 법칙의 확립은 전자기학 발전 사상 가장 중요한 성과였다.

전기 분해의 첫 번째 법칙과 두 번째 법칙의 완성은 훗날 사람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사람들은 이 두 가지 법칙을 합쳐서 ‘패러데이 전기 분해 법칙’이라고 불렀고 이 법칙은 전기화학의 기초가 되었다. 그리고 근대 전자론의 확립에 매우 중요한 실험적 근거를 제공했으며 이는 인류가 물질 구조를 인식하는데 교두보 역할을 했다.

- 패러데이 생의 마감

패러데이는 언제나 겸손함을 잃지 않고 개인의 명예와 이익에 큰 욕심을 내지 않았다. 한 번은 영국 정부가 패러데이의 업적을 치켜세우며 당시 귀족들만 묻힐 수 있었던 묘지를 지정해주지만 거절했다. 대신 “배우지 못해 꿈도 꾸지 못하는 아이들이 과학강연을 들을 수 있게 지원해 달라”고 청원을 했으며 1867년에 75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학자로서 평생을 비뚤어지지 않고 청렴한 자세를 유지하며 어려운 환경에 있는 이들 또한 배움의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한 패러데이. 그는 그가 이룬 업적은 물론 인간으로서도 칭송받아 마땅한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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